병원 설립 100년 만에 진료부원장에 非임상의사 임명

[유승흠의 대한민국의료실록] (38)병원-의대 개혁 ‘길라잡이’

1990년 세브란스병원 진료지원 담당 부원장으로 임명을 받았다. 세브란스의 한 세기 역사상 임상의사가 아닌 교수가 부원장으로 임명된 것은 처음이었다. 2년 임기가 끝나기 한 학기 전인 1992년 9월엔 의대 교무과장(현 교무부학장)의 중책도 맡게 됐다.

최우선 순위로 교수 인사제도 개선을 염두에 뒀다. 미국 존스홉킨스 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때 메디칼 캠퍼스의 교육행정을 유심히 관찰했던 것이 도움이 됐다. 필자는 교무행정을 담당하면서 관련 사항을 외과 교수인 황의호 학장과 두루두루 상의했다.

교원 승진을 심사할 때 객관성을 높임과 아울러 교육, 연구, 진료 영역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교원 승진 평가 기준(안)’을 개발했다.

교수 승진을 평가할 때 SCI(인용색인)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면 인센티브를 주도록 했으며, 연구비 배정에도 이를 참조토록 했다. 우리나라 의대 교수 평가에서 SCI논문 게재를 반영한 것은 공식적으로 처음이었는데, 이를 알게 된 다른 대학들도 관심을 기울였다고 들었다.

해외연수 신청을 하려는 젊은 교수들에게 TOEFL 성적을 제시하여 일정 기준 이상일 때 연수비를 지원받도록 했다. 해외연수 안내서를 제작했고, 해외 연수기관에서 지도교수의 평가서를 작성해 의대에서 받아보도록 했다. 해외에 연수가는 교수들이 정성껏 연수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계기를 만든 것이다.

또 교수들이 책을 발간할 때에는 저술 보조비 200만원을 후원해 출판을 하는데 재정적 어려움이 없도록 지원했다. 연구전임 교수와 임상전임 교수제도 개선 방안도 보완했다. 이러한 구체적인 제안들은 의대 상임교수회에 부의했고 모두 공감하였기에 통과돼, 전체교수 모임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한 뒤 시행했다.

1990년대 들어 임상교수가 증가해 400명 수준이 됐다. 이에 사진과 함께 전공분야와 해외연수 등을 소개하는 교수편람을 제작하여 배포했다(1993년).

병원 부원장 때 임상약리학 영역 발전을 제안했다. 1994년 약리학교실과 협의, 교수 3명을 뽑아 임상약리 영역 해외연수를 받도록 하였다. 그 중 박민수 교수가 2004년부터 세브란스임상시험센터 소장으로 임상약리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꾸준하게 의학교육을 구체적으로 활성화하는 것이 필요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일리아스 고문의 배려로 의학교육 본산인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국내 최초로 김일순 조교수가 1974년에 의학교육 석사 학위를 받았는데, 10년이 훌쩍 지난 뒤 의학교육과를 설치하려 하였지만, 1990년대 초까지 수용되지 않았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의학교육 담당 경력의 이무상 교수 그리고 기초의학, 임상의학 각 1명을 선정하여 1994년에 호주에 있는 WHO 서태평양지역 의학교육센터에 6개월 파견했다. 1996년 마침내 연세대 의대에 의학교육학과가 설립됐다.

1992년 한·중수교가 이뤄졌다. 옌볜(延邊)의학원 교수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연수받기를 희망해서 재단법인 유한재단의 재정 지원을 받아서 6개월씩 연수받도록 했다.

의대 학생들에게 한의학을 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의대 정규과목으로 개설 운영했다. 마침 미국에서 한의학 관련하여 공부를 했던 재활의학과 전세일 교수가 한의학 강좌를 담당하였다.

에비슨 교장이 제중원의학교와 세브란스의학교 교장을 역임하면서 학적부를 3부씩 만들어서 학교, 제주도, 미국에 각각 1부씩 보관하도록 한 것을 파악해서 두루두루 살펴보았다. 전쟁을 겪었으면서 우리나라에서 학적부가 제대로 완벽하게 보관된 곳은 연세대 의대뿐임을 알게 되었다.

의대생들이 책을 비롯해서 보관해야 할 물품들이 많아서 복도에 학생 사물함을 설치하여 활용하도록 했다.

1988년부터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 겸임교수를 하면서 겨울방학에는 ‘의료보험’ 정규강좌를 담당하여 강의를 하러 다녀왔다.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에서는 총동창회가 주관하여 매년 국제세미나를 개최한다. 1993년에는 ‘Health in Asia’로 정하고 필자에게 연락이 왔는데, 서울에서 개최하는 것을 제의했다. 국제회의를 주관하려면 재정 부담이 될 터이므로 존스홉킨스 원로 동문들과 상의했더니 서울 개최에 적극 동의했다.

필자의 주관으로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 국제세미나가 10월 15일부터 4일 동안 서울에서 개최됐다. 한상태 WHO 서태평양지역 사무처장과 김정숙 보건사회부 장관이 축사를 했다. 아시아에서는 물론, 아프리카에서도 장관 3명 등 외국인 90여명이 참가해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참가자들이 등록비는 부담했지만 운영비가 필요했다.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 한국동창들이 재정 지원을 했다. 산부인과 송상환(연세대 의대 1958년 졸업), 정순오(연세대 의대 1959년 졸업) 존스스홉킨스 동문이 많이 후원했다.

교무업무 임기를 마치자 필자는 3개월 간 해외연수 승인을 받았다. 의학 교육으로 유명한 토마스 제퍼슨 의대 조세프 고넬라 학장에게 갔다. 고넬라 학장은 필자를 학장실 건너편에 연구실을 배정해서 자주 대화를 나누도록 배려했다.

이에 필자는 의학 교육에서 궁금하였던 사항들을 고넬라 학장과 면담하여 잘 알게 됐고, 우리나라 의학교육의 미래를 뇌리에 새겼다. 이를 바탕으로 대한의학협회(현 대한의사협회) 학술이사, 기획이사를 담당하면서 의학교육협의회를 구성했고 간사로서 의학교육평가사업을 해 의학교육평가원을 설립하는 기초를 만들었다.

    유승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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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ik*** 2024-05-01 14:44:18

      좋은 내용 입니다.변화가혁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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