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로 잃은 150억, 이렇게 찾았다

80대 노인 ㄱ씨는 150억 원대 재산을 보유한 자산가였다. 그러나 ㄱ씨가 치매에 걸린 후 그의 재산은 손 안의 모래처럼 새어나가기 시작했다.

치매에 걸린 ㄱ씨는 여느 정신 질환자와 마찬가지로 건강 관리, 금전 거래 등에서 자신의 법적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웠다. 다행히도 형편이 넉넉한 ㄱ씨의 자식들이 재산 관리를 맡아 의료 서비스 질이 떨어지는 요양 병원을 전전하는 일은 없었다.

ㄱ씨의 자식들은 ㄱ씨를 보증금 3억 원, 월세 150만 원 짜리 월세방에 모셨다. 누군가에게는 ‘금수저 월세방’이라 할 만한 곳이었지만 ㄱ씨가 평생에 걸쳐 일군 자산은 더이상 ㄱ씨의 것이 아니었다. ㄱ씨의 자산은 대리인인 몇몇 자식들의 의사에 따라 쓰였다.

몇 년간을 ‘빛 좋은 무주택자’로 살아온 ㄱ씨는 전문가 후견인을 통해 잃어버린 자산을 복구할 수 있었다. ㄱ씨의 재산 상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ㄱ씨의 친족이 법원에 후견 신청을 한 것이다. ㄱ씨의 후견인은 ㄱ씨의 의지에 관계없이 자식들이 거래한 재산 일부를 복구하고 ㄱ씨를 적절히 간호해줄 수 있는 요양 보호사를 고용했다. 또 서울 중심가의 고가의 집을 거래해 ㄱ씨의 안정적인 생활을 도왔다.

2013년 도입된 성년 후견 제도에 따르면, 법원은 본인, 친족, 검사, 지자체장 등의 신청을 받아 정신적 제약이 있어 재산 행위, 치료 및 요양 등 복리 행위 능력이 부족한 성년(피후견인)에게 후견인을 선임할 수 있다. 선정된 후견인은 피후견인의 재산을 관리하거나 법률 행위의 대리권, 동의권 등을 행사할 수 있다.

지난 2016년에는 치매를 앓으며 홀로 살아가던 20억 원대 자산가 ㄴ씨가 검찰의 대리 신청으로 후견인 선임을 받았다. 중증 노인성 치매 진단을 받던 ㄴ씨는 억대 자산에도 정신 병원 폐쇄 병동에 머물 수밖에 없었으나 ㄴ씨가 다니던 노인종합복지관 담당 복지사의 도움으로 성년 후견을 받게 됐다. 2017년 ‘치매관리법’ 개정에 따라 각 지방자치단체장이 성년 후견을 대리 신청할 수 있도록 제도 활용을 위한 법적 근거가 강화되기도 했다.

여전히 법정 후견인 대다수는 친족인 경우가 많지만 적어도 치매 환자에 있어서는 친족 아닌 공공 후견인 활용이 늘어날 전망이다. 보건복지부는 오는 9월부터 저소득층 65세 이상 치매 노인을 대상으로 성년 후견 제도(공공 후견 제도)를 활용할 방침이다. 각 지자체장이 자력으로 후견 신청이 어려운 치매 노인을 위해 후견 심판을 청구하고, 보건 당국이 공공 후견인에게 일정 수당을 제공하는 형태다.

박호균 법무법인 히포크라 변호사는 “성년 후견 제도는 치매, 발달 장애 등 정신 질환자를 법적 능력이 없는 무능력자로 보던 기존의 금치산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됐다”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법적 능력이 없거나 그 능력의 일부를 상실했다고 해서 최소한의 생계 조치만을 받고 살아가는 ‘사회적으로 무의미한 존재’가 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말했다.

박호균 변호사는 “우리 사회에 부모 봉양의 정서가 옅어지면서 돈 많은 자산가가 치매에 걸린 후 자식들에게 방치되거나, 저소득층 치매 노인의 기초 생활 수급비를 친족이 대신 받고 환자 본인은 요양 병원을 전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치매 노인이 처한 다양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후견 제도가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진=sabthai/shutterstock]

    맹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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