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 넷이 동시에 안 죽었다면 어땠을까?”


“감염 사고, 모든 병원에서 일어날 수 있다”

[인터뷰] 이대목동병원 사망 원인 정확히 예측한 이재갑 교수

이화여대목동병원에서 발생한 신생아 사망 사건의 원인이 주사제로 인한 감염으로 좁혀졌다. 지난 26일 질병관리본부에서 신생아의 혈액과 주사제에서 동일한 항생제 내성균이 발견됐다고 밝히면서 원인 규명이 거의 끝난 것으로 보는 전문가도 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가 대표적이다. 이 교수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던 환자 가운데 5명이 한림대 강남성심병원으로 옮겨오면서 사건 이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관련 정보를 접해온 사람이기도 하다.

27일 ‘코메디닷컴’은 이재갑 교수를 만나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의 원인, 판단 근거, 이번 사건에 대한 평가와 향후 과제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재갑 교수는 주사제 오염으로 사망 원인이 좁혀지는 것을 놓고 “일어나서는 안 될 당혹스러운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번 사고를 특정한 의료인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것에는 우려를 표시했다. 모든 의사들이 ‘우리 병원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걱정할 만큼 우리나라의 감염 관리 체계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이재갑 교수는 이번 사건을 특정인의 잘못으로 몰아가기보다는 “한국의 감염 관리 체계를 바로 잡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건이 발생한 이후 장염, 패혈증을 비롯해 사망 원인에 대한 추측이 많았습니다. 19일 질병관리본부에서 신생아의 혈액에서 항생제 내성을 가진 ‘시트로박터 프룬디’ 균이 검출됐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이후에 항생제 내성균 감염이 사망 원인이라고 확정적으로 말씀하셨는데, 근거가 무엇인가요?

“현장에 있는 의사라면 누구나 유추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항생제 내성균은 보통 중환자실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이 때문에 항생제 내성균이 검출됐다는 결과가 나오자 대부분의 의사는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오염된 항생제 내성균에 의한 사망을 떠올렸어요. 비교적 명확한 상황이라 사실 ‘누가 먼저 말하냐’의 문제인데, 제가 먼저 말한 셈이 됐습니다.”

– 주사제에 의한 감염이 사망 원인이 아닐 수 있다는 몇 가지 반론이 있습니다. 먼저 같은 주사제를 맞은 신생아 5명 가운데 1명이 생존해 주사제가 정말 원인이 맞는가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똑같이 오염된 주사제를 맞았다 해서 모두 사망에 이르는 건 아닙니다. 외국의 주사제 오염 사례의 논문을 봐도 감염됐다고 반드시 죽는 것은 아닙니다. 투약 조건도 다르고, 건강 상태도 다르고, 수액을 제조하는 과정에 모든 주사제가 다 오염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가령 투약 상황에 따라 맨 처음 주사제를 맞은 신생아에게 균이 적게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이번 이대목동병원 사망 사건의 경우 쌍둥이 가운데 한 명은 사망하고 다른 한 명은 생존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생존한 한 명은 500그램 이상 컸습니다. 신생아에게 500그램이면 1달 이상 발육이 빠른 겁니다. 균이 치명적이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균에 견디는 능력이 클 수도 있는 거죠.”

– 주사제에 의해 감염됐다고 하더라도 주사제가 오염될 수 있는 경로는 다양합니다. 반드시 신생아 중환자실 내에서 의료진에 의해 감염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오염이 일어날 수 있는 경로는 다양합니다. 논문에도 11차례 주사제 오염 사례 가운데 중환자실, 약제과, 제조사로 오염 장소가 다릅니다. 하지만 제약 회사에서 문제가 됐다면 같은 로트 번호의 주사제가 오염된 것이라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감염이 발생해야 합니다. 또 다제 내성균이 아니라 공정 과정에서 잘 오염되는 다른 것이 주사제에서 발견됐을 겁니다.

약제과도 오염을 일으키는 것은 피부상재균이나 먼지에서 나오는 균입니다. 특이한 균이 나오는 것이죠. 항생제 내성균이라고 하니까 중환자실 오염을 생각한 것입니다. 시트로박터 프룬디는 중환자실에서 잘 나오는 내성균이죠. 그래서 그람음성균이 확인됐을 때 수액 사고라는 것을 짐작했습니다. 항생제 내성을 가진 시트로박터 프룬디는 중환자실 오염 말고 설명할 방법이 별로 없죠.”

–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부검 결과를 발표하면서 ‘감염으로 동시에 사망하는 것은 어렵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감염으로 여러 명이 동시에 사망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요?

“감염으로 30분에 다 죽을 수 있습니다. 집단 사망 사고가 일어났다고 하면 의사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원인은 약제 투약 사고입니다. 칼륨제를 많이 넣을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너무 동시에 죽어서 감염병보다 다른 원인을 먼저 생각했던 것이죠. 하지만 그 때도 감염병으로 결론이 나면 수액 사고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항생제 내성균 검출 소식이 ‘감염으로 인한 사망’을 더 확신케 해주는 것이고요. 아니길 바랐던 것뿐입니다. 제일 아니었으면 하는 당혹스러운 사건인거죠.”

– 환자를 치료하고 관리해야 할 중환자실에서 발생한 의료 사고라는 점에서 대중의 공분을 샀습니다. 도저히 일어나 수 없는 어이없는 사고라는 반응입니다.

“중환자실에서 터지면 안 되는 일이 발생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이전에 이런 사고가 없었느냐 하면 모르는 일입니다. 이번에 유독 동시에 다 사망했으니까 문제가 된 것일 수 있습니다. 거꾸로 말해서 균의 양이 다르고 몸무게가 다 달랐다면, 시차를 두고 하루 이틀 간격으로 사망했으면, 요즘 안 좋은 애들이 많았구나 하고 끝날 수도 있는 문제였습니다.

이번 사건은 여러 명의 신생아가 손쓸 새도 없이 집단적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더 문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말씀드렸듯 감염의 원인과 경로는 매우 복잡합니다. 지금과 똑같이 주사제 오염이 원인이라도 겉보기 상황은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었다는 겁니다. 만약 신생아 한두 명 정도가 시간차를 두고 사망했다면 아무도 그 이유를 제대로 알아보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 이번 사건에 대해 의료계 종사자도 우려의 시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점을 걱정하는 것인가요?

“모든 의사들의 공통된 반응이 있습니다. ‘이대목동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병원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병원이 아닌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신생아 중환자실을 포함한 우리나라 병원 내 위생 및 감염 체계는 무척 취약합니다.

감염 영역에만 한정한다면, 감염에 취약한 병원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공식적인 지표가 여태까지 없었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다행히 2018년부터 시범 사업으로 운영되던 ‘신생아 중환자실 감염 관리 지표’가 정식으로 시행될 예정입니다. 이런 지표가 있으면 이대목동병원의 감염 관리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특정 경로의 감염이 왜 일어났는지 등을 비교 분석할 수 있습니다.

결국 시스템의 문제인데, 이번 사건을 주사제를 조작한 특정한 사람만 잡는 일이 될까봐 걱정합니다. 주사제를 조작한 사람은 뻔합니다. 근무표 같은 것만 확인하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임을 특정 간호사에게 물어서는 안 됩니다. 단지 그때 그 일을 했어야 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역학 조사는 범인을 잡는 과정이 아니지만, 경찰 입장에서는 범인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결국 과실치사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 분위기가 무겁습니다.”

– 시스템의 문제라면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할까요?

“기본 인프라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월호 사건, 신생아 집단 사망 사건, 제천 화재 등 저마다의 영역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모두 ‘국민 복지와 안녕’을 위한 기본 인프라 투자가 미약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메르스 사태 이후에도 감염 관리용 정부 예산이 잠시 투입됐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아직 요원합니다. 우리 병원만 해도 고작 1명이었던 감염 관리 간호사가 2명으로 늘어난 정도니까요. ‘메르스 사태가 몇 번 더 터져야 바뀌려나’ 하는 한탄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하루 빨리 개발과 성과 위주의 정책에서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실질적인 정책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도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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