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약값 싸다”는 美, 이유는?


[‘스페셜 301조’로 본 제약 ] 한국 약가 제도는 이중 구조?

한국 정부와 제약 회사를 대상으로 미국제약협회가 미국 무역대표부에 보복 관세를 부여하는 ‘스페셜 301조’를 요청했다. 그 이유는 ‘약값’ 때문이다.

첫 번째 기사(한국 약가 너무 싸다는 다국적 제약사, 정말?)에서 언급한 대로 미국제약협회는 한국에서 팔리는 다국적 제약사 의약품값이 너무 싸다고 주장한다. 국내에서 활동 중인 36개 다국적 제약사도 같은 생각이다.

약값이 싸다는 미국제약협회와 다국적 제약사의 주장에 정부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라며 “약값 인상을 위한 노림수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오히려 정부는 “다국적 제약사는 충분한 이윤을 남기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들의 약값 인상 요구에 10년 동안 흔들림 없었던 이유기도 하다.

“이중 구조가 약값 낮춰”

하지만 미국제약협회와 다국적 제약사는 “국내 약값이 세계 최저 수준”이라며 그 원인을 국내 국민건강보험 급여 협상 체계에서 찾고 있다. 실제로 미국제약협회는 “한국 약가 정책은 이중 구조이기 때문에 약값이 낮게 책정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측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신약 등재 제도를 살펴봐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 제약회사의 희귀 질환 치료제 신약이 국내에 들어올 경우를 가정해 보자. 희귀 질환 치료제는 일반적으로 고가 의약품에 속한다. 따라서 국민건강보험 급여를 적용받지 않으면 사실상 대부분 환자는 처방받기가 힘들다.

그 때문에 약을 많이 팔아야 하는 제약사 입장에서도, 약이 필요한 환자 입장에서도 국민건강보험 급여 등재가 필요하다.

급여 등재를 위해서는 우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경제성 평가를 받게 된다. 경제성 평가는 약의 효능과 가격을 고려해 급여 혹은 비급여를 판단하게 된다. 경제성 평가를 통과한 의약품은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약값을 협상하게 된다. 여기서 제약사와 공단 간의 약가 협상이 이뤄지면 환자들이 급여가 적용된 값으로 의약품을 처방받을 수 있게 된다.

미국제약협회는 건강보험심사평원의 ‘경제성 평과’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약가 협상’ 과정을 사실상 두 번의 약가 협상 구조로 인식하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도 이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다국적 제약사 관계자는 “약가 협상을 두 번 한다고 보기엔 모호하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경제성 평가에 보험 급여 수준의 약값이 제시된다”며 “그렇게 제시된 약값을 통해 경제성 평가를 통과하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약가 협상에서 더 낮아진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사실상 경제성 평가도 약값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라는 것.

다국적 제약사를 대표하는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 관계자는 “과도한 정부 통제 때문에 약값이 판매 불가능한 수준으로 낮아지고 있다”며 “이 때문에 제약사가 한국에서 신약 출시를 포기하거나 환자가 약값을 전액 부담하는 비급여 출시 상황을 불러일으킨다”고 설명했다.

정부, “이중 구조 아냐. 일련의 과정일 뿐”

정부는 미국제약협회가 제기한 이중 구조 문제에 발끈하고 있다. 한 마디로 “이중 구조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미국 대표부에 보낸 반박 자료에서도 ‘약가 협상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해당 제약사와 진행하는 것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관계가 없다’고 명시했다.

의약품 경제성 평가를 담당하고 있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역시 같은 반응이다. 심사평가원 관계자는 “경제성 평가는 약가 협상을 하는 단계가 아니고 해당 의약품의 급여 비급여를 판단하는 과정”이라며 “협상을 하지도 않는데 약가 협상이라는 것은 미국 측의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도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복지부 관계자는 “경제성 평가는 약값을 협상하기 위해 진행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경제성 평가가 약가 협상 과정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중 구조가 아닌 보험 급여 등재를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다국적 제약사와 관련해 흥미로운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가 급여 등재를 의식해 오히려 다른 나라보다 비싼 가격에 의약품을 국내로 들여온다는 것.

실제로 기자가 만난 한 대학병원 교수도 비슷한 말을 전한 바 있다. 해당 교수는 “다국적 제약사는 보통 한국에 약을 들여올 때 다른 나라보다 높은 가격을 책정한다”며 “이는 보험 급여 등재를 의식한 것으로 보험 가격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한 꼼수”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실시하는 경제성 평가를 담당하는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소속이다.

    송영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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