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비선 의사’ 논란..“의료시스템 쇄신 계기로”

이번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계기로 한국 의료 시스템이 위기에 몰렸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의사 수준이나 치료 기법, 시설 등은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지만, 이를 지원해야 할 의료행정 시스템이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국정농단 뿐 아니라 ‘의료’에 대해서도 분노하는 것은 최순실 사태에서 밝혀진 의료계의 병폐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기 때문이다. 일반 시민은 의사의 처방전을 얻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여야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주변에선 ‘대리처방’이 너무나 쉽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의사 김모씨는 차움의원 재직 시절인 2013년 3월 25일부터 2014년 3월 17일 사이 최순실씨 언니 최순득씨 이름으로 주사제를 12차례 처방해 직접 청와대로 가져간 것으로 보건복지부 조사에서 밝혀진 바 있다.

최순실씨는 가명 진료가 예사였다. 2013년 10월부터 2016년 8월까지 약 3년간 총 136회의 진료를 김영재의원(진료과목 성형외과)에서 받았는데 모두 ‘최보정’이라는 가명으로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김영재 의원의 최순실씨 진료기록부 허위 작성여부에 대해 수사중이다.

청와대가 미용-영양 목적의 주사제인 이른바 태반주사, 감초주사, 마늘주사 등을 대량 구입했다는 사실에는 할 말을 잊은 사람들이 많다. 이들 주사제는 의학적인 근거가 부족해 전문의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일고 있는 의약품들이다.

이미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인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연구보고서(2010년)를 통해 “태반주사는 임상적 효과성과 안전성의 근거가 부족하다”면서 효과의 불확실성과 안전이 가장 우려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태반주사 관리를 위해 적절한 행정 조치가 필요하며, 소비자인 국민 또한 식약처 허가외 사용에 대해서는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보건의료연구원은 “현재의 식약처 허가 적응증(갱년기 장애 및 만성간질환)의 경우에도 태반주사제가 다른 표준치료와 비교해 효과적이고 안전한지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처럼 안전성 논란마저 일고 있는 의약품 구입에 국민의 세금을 쓴 것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비선 실세’에 이어 ‘비선 의사’가 유행어가 된 것도 의료계는 물론 국민들을 허탈하게 만든다. 최순실씨는 자신의 단골 의사를 통해 대통령의 건강까지 ‘비선’으로 간여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주치의나 의무실장으로 이어지는 의무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비선 의사’를 이용한 박근혜 대통령은 ‘건강관리’마저 수사대상이 되면서 개인 정보로 보호돼야 할 그의 진료 기록까지 마구 노출되고 있다. 정식 시스템에 따르지 않고 ‘비선’에 의존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또 다른 ‘고위층’의 적나라한 의료기관 이용 행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들은 언론에서 자주 쓰는 ‘사회 지도층’으로 부를 수도 없다. 그저 ‘비선’에 의해 높은 감투를 얻었고, 그 감투를 이용해 생명을 다루는 신성한 영역인 의료기관을 마구 휘저어 놓았다.

최순실 사태는 국정 농단을 넘어 의료 시스템에도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의료 현장에서 밤을 새우며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의 헌신을 의료행정이 못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뼈아프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의료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불투명한 의료행정 시스템부터 먼저 쇄신해야 한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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