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기 저시기 머시기 3

정부가 부정으로, 기사가 사기로 들리는 세상

참말로 말 많은 시상입니다. 말들도 얼매나 번드르르 헌지, 말만 듣고 있자면

태평성대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어 부립니다. 근디 문제는 같은 편일 때만

거시기 허다는 겁니다. 내 편이 아닐 때는 가차 없이 ‘창 같은 말’ ‘비수 같은

말’이 거시기 헙니다. 상대 가심을 꼭꼭 찌르고, 상대 거시기를 베어버립니다.

여당 의원이 ‘저것은 거시기 허다’고 말허먼, 곧바로 야당 의원이 ‘이것은

저시기 허다’고 맞받아 쳐 부린게요. 모든 단어가 똑 부러지고 옹골진 말들인디,

그 속은 알고보먼 텅텅 빈 맹탕입니다. 모다 진정성이 하나도 없는 싸가지 없는 말들입니다.

말이 말을 낳고, 그 말들은 화살이 되어 이곳저곳 강호를 활개침서 댕깁니다.

말을 망쳐 놓은 것은 하나 같이 배운 사람덜입니다. 까막눈 시골 농부나 산골

할머니, 할아버지들 말씸은 쬐께 촌시럽고 투박헐지 몰라도 그 속은 꽉 차 있습니다.

그 분들은 ‘거시기’란 단어 하나만 가지고도 다 통해 부립니다. 굳이 많은 단어가

필요 없응게요. 이미 맘으로 다 통허는디, 무신 군더더기가 필요허겄습니까. 그 분들헌티

말이라는 것은 그 마음을 확인허고 다짐허는 노래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소설가 나쓰메 쇼세키(1867~1916)는 어느 날 한 정치인으로부터 정중한

초대장을 받았습니다. 그는 곧 하이쿠 시로 답장을 보냈습니다. ‘뻐꾸기가 밖에서

부르지만/ 똥 누느라 나갈 수가 없다’

1960년대 어느 날 서울태평로 국회의사당 앞에서 신동엽(1930~1969) 시인은 고래고래

외쳤습니다. “국회의원 두 개에 십 원!, 국회의원 두 개에 십 원!”

이 땅의 정치인들 말은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습니다. 왜 하나 같이 “나만 옳다”고

고래고래 소락때기를 질러대는 지 모르겄습니다. 입만 열면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험서도 막상 국민덜 소리는 하나도 듣지 않습니다. 인자 하도 속고 지쳐서 그들의

말은 거꾸로 들립니다. ‘정부’라고 허먼 ‘부정’으로 들리고, ‘사치’라고 허먼

‘치사’로 들려버립니다. ‘부자’는 ‘자부’이고, ‘재산’은 ‘산재’이고, ‘여행’은

‘행여’이고, ‘병사’는 ‘사병’이고, ‘일생’은 ‘생일’이고….

공무원, 경찰관, 선생님, 언론인, 고위 군인들…하나도 다를 거 없습니다. 다

‘네 잘못’이라고 손가락질 혀대기 바쁩니다. 요즘 시상에 언론이 어디 있당가요?

기양 자기덜이 보고 자픈 것만 보는디…. 이 방송 저 방송도 들어보고, 이 신문 저

신문 모다 봐야 어럼풋이 그림이 쬐께 그려질랑가 말랑가 혀 부립니다.

‘이론’은 ‘논리’로 들리고, ‘사설’은 ‘설사’로, ‘기사’는 ‘사기’로

걍 뒤집어 들려버리는 디, 도대체 나가 어치케 잘못된 거신지, 아니먼 이 시러배

같헌 시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거신지 정말 화안장 헐 노릇입니다.

‘드라마’라고 하면 무신 ‘마라도 섬’이 생각나 불고, ‘포커스’ 어쩌구 저쩌구

허먼, ‘서커스 곡마단’이, 무신 *BS방송이니 *BC방송이니 혀싸면, 언뜻 S라인이나

기원전(BC) 미라가 떠올라 버리니, 머리 속에서 쥐들이 달음박질 허는 것 같습니다.

소설가 김훈은 ‘댓글 세상’이라고 말해 버립니다. 더 이상 말이 통허지 않으면

‘무기의 시대’가 온다고 말헙니다. 인자 더 이상 ‘듣기 세상’은 사라졌다고 한탄헙니다.

온갖 넘들이 소락때기만 지르지 말고 일단 좀 남의 말을 들어봐야 허는디, 듣는 넘은

하나도 없으니 ‘소음의 시상’이 된 것이지요.

온갖 개소리덜이 어지러운디, 더 웃기는 짬뽕은, 맨 처음 짖는 개야 그려도 먼가

쬐께 알고 짖는다고 혀도, 그 나머지 개덜은 무조건 처음 짖는 개를 따라 지악시럽게

짖어댄다는 겁니다. 꼭 푹푹 찌는 여름날, 악머구리 떼 울부짖는 거 같당게요.

“말은 허약한 것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거나 칼럼을

써서 자기 의견을 주장했다고 치자. 아주 고귀하고 고매한 진리를 말했다고 치자.

나의 생각과 정반대로 이야기를 해도 훌륭한 말이 된다. 그 반대로 이야기해도 또한

말이 성립이 되고 훌륭한 담론이 되고 멀쩡한 틀이 된다. 그럼 나의 말은 무엇인가.

나의 주장은. 그것은 남의 언어에 의해서 부정당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나를

부정한 남의 말, 그것은 또 다른 언어에 의해서 부정된다. 이 허약한 것이야말로

언어의 힘인 것이다. 언어란 바로 그렇게 무너지고 수정되듯 허약한 것이기 때문에

그 안에 소통할 수 있는 힘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언어가 완강한 돌덩어리처럼

굳어져 다른 언어에 의해서 절대로 부서질 수 없다면, 그것은 언어가 아니고 무기이다.

그런 언어는 소통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시대의 언어는 무기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정의라고 믿는다. 소통을 단념한, 단절만의 정의이다.

단절만이 완성된 것이다. … 말이 세계를 개조한다는 것은 아마 말이 세계를 개조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만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하면 말로 해서 안 되면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말로 안 되면 어떻게 하나? 그 다음은 무기의 세계이다. … 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언어적 비극은 듣기가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채팅만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듣기가 안 되니까 청각장애인들이 다 모여 있는 것이다. 혼자서

담에 대고 떠들어대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극적인 언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

나는 요즘 신문이나 저널을 읽기가 너무 어렵다. 왜냐하면 그 언어가, 이 사회적

담론이 의견과 사실을 구별하는 능력을 상실한지 이미 오래됐기 때문에,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해버리는

것이다.”

[‘바다의 기별‘-생각의 나무]       

말이 돌처럼 딱딱허게 굳은 시상. 청각장애인들의 채팅 전성시대. 저마다 담벼락에

대고 혼자 앙앙불락 허는 미친 넘들의 나라. 거시기는 아조 물렁허고 말랑말랑허기

짝이 없는 허약헌 단어입니다. 되는 거도 없고 안 되는 거도 없고, 이 놈이 ‘어’

허먼 ‘어’ 허고, 저 놈이 ‘응’ 허먼 ‘응’허고, ‘사실’이라먼 ‘그런게비다’

허고, ‘의견’이라먼 ‘또 그런게비다’ 헙니다. 거시기는 속창아리가 없습니다.

실체도 없고, 무신 뜻도 없고, 낙지같이 흐물흐물 뼉다구 없는 연체동물입니다.

그런디도 거시기는 모든 것을 다 품에 안습니다. 바닷물도 안고, 강물도 안고,

또랑물도 안습니다. 진보도 이쁘다 허고, 보수도 이쁘다 허고, 뚱보도 멋있다고 허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최고라고 헙니다. 거시기는 죽어도 편을 안 가른당게요. 그냥

모든 게 거시기 허고 저시기헙니다. 그것은 맴과 맴을 이어주는 ‘침묵의 소리’입니다.

이 시상에 어떤 단어도 사물을 정확하게 모두 담을 수는 없습니다. 내가 ‘꽃’이라고

부르는 순간 진짜 ‘꽃’은 화르르 휘발해 버립니다. ‘촛불’이라고 규정짓는 순간,

그 ‘촛불의 본질’은 훨훨 날아가 버립니다. 말은 그냥 사물의 냄새나 기억을 쬐께

담을 수 있을 뿐입니다.

이 땅별에 사는 모든 먹물들은 ‘말의 노예’들입니다. 말이나 단어 속에 모든

게 들어 있다고 생각혀 부립니다. 그려서 말의 신도가 되고, 낭중에는 지가 그 말의

주인이 됐다고 생각헙니다. 맘껏 말을 부릴 수 있다고 착각혀 부립니다. 말로 창과

비수를 만들어 눈깜땡깜 마구마구 휘둘러버립니다. 그 순간 그는 말의 노예가 되는

거신디, 그걸 까맣게 모릅니다.

지발 2009년엔 말들이 지 자리를 찾었으먼 좋겄습니다. ‘거시기’ 같은 말랑말랑헌

말들이 차돌멩이 같은 언어들을 쬐께 녹여 줫으먼 좋겄습니다.

“어이, 나가 마리여, 어저끄 거시기랑 거시기 허다가 거시기 헌티 거시기 혔는디,

걍 거시기 혀부렀다.”

“오매~ 이잉~ 어찌쓰까 이잉? 긍게 나가 그렇게 거시기랑 거시기 허지 말라고

거시기 허잖든가? 사람이 먼 말을 허먼 좀 거시기 히야지 원.”

“아따 왜 그런다요 이잉~? 사람 사는 이치가 어치케 거시기 안 허고 거시기 헌다요.

그냥 나가 거시기 혔다고 생각허고 거시기 혀 부리제.“

“허, 자네 참, 뱃속 한번 거시기 허고만 이잉. 그리고 이 사람아, 앞으로는 거시기는

구신도 모르는 거신게 나한티 자꼬 거시기 거시기 혀싸지 마소! 인자 고만 좀 거시기

머시기 혀 라 그 말이네”

“긍게요 이잉. 저그 거시기 머시냐, 나도 거시기를 안헐라고 저시기 허는디,

자꼬만 거시기가 나오는디 어치케 거시기 헐 거시오. 앞으로 조심헐 팅게 우리 그런

뜻으로 한번 거시기 혀 부립시다. 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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