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문재인 대통령이 틀렸다!

[강양구의 '바이오 워치'] 문재인과 박기영

[강양구의 ‘바이오 워치’]

어제(8월 10일)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사퇴를 거부했다. 사과인 듯 사과 아닌 사과 같은 말을 11년 만에 쏟아내긴 했으나 결론은 “기회를 달라”였다. “구국의 심정으로 일로써 보답”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과학기술계는 물론이고 심지어 문재인 정부의 열성 지지자조차도 ‘이건 아닌 것 같다’ 하는데도 버티기에 돌입한 것이다.

 

그렇게 버티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여전히 문재인 대통령이 자기편이라는 확신이었다. 청와대 박수현 대변인의 설명을 따르자면,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때 대한민국의 과학기술 경쟁력이 제일 높았고” 그 높았던 과학기술 경쟁력을 상징하는 일이 바로 “과학기술부총리 제도와 과학기술혁신본부의 존재였다”고 생각한단다.

 

그러니 과학기술부총리 제도와 과학기술혁신본부를 만든 박기영의 ‘공’과 황우석 사태의 ‘과’ 가운데 “공을 높이 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하루 이틀 더 여론을 살핀다고 했지만, 사실은 박기영 본부장의 유임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3단 논법이다. 하지만 전제부터 틀린 엉터리 3단 논법이다.

 

아무리 국민적 지지가 높더라도 문재인 대통령이 무오류는 아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틀렸다.

 

노무현 정부 때 과학기술 정책은 엉망진창

 

하나씩 따져 보자. 노무현 정부 때 과연 대한민국 과학기술 경쟁력이 높았던가?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해서 지금까지 영향력이 큰 패러다임 가운데 하나가 ‘선택’과 ‘집중’의 과학기술 정책이다. 이 과학기술 정책은 노무현 정부 때도 변함이 없었다. 그 가장 큰 폐해가 바로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에 올인(all-in)한 것이다.

 

물론 당시 상당수 과학기술자가 노무현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에 기대를 가졌었다. 예를 들어, 이공계 위기를 타개하고자 이제 갓 박사 학위를 받은 신진 연구자를 지원하거나, 이공계의 공직 진출을 돕는 프로그램이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어느 순간에 ‘황우석’ 하나로 집중되면서 엉망진창이 되었다.

 

예를 들어, (박기영 본부장의 주장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이 아이디어를 냈고, 청와대가 주도했던 ‘최고 과학자 연구 지원 사업’만 해도 그렇다. 애초 이공계 위기를 타계하고자 마련했던 박사 학위를 받은 2년 이내 연구자 10명에게 조건 없이 연 1억 원씩 주려던 사업은 또렷한 설명도 없이 폐기되고, 그 돈 10억 원은 1호 ‘최고 과학자’ 황우석 박사에게 돌아갔다(2005년).

 

당시 과학기술부는 논란이 되자 이렇게 해명했다. “10억 원으로 5~10명의 신진 과학자를 지원하는 것보다 세계적 연구 성과를 낸 최고 과학자를 집중 지원하면 국가 발전을 선도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이 사업의 목표인 최고 핵심 인력 양성에도 오히려 기여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랬는데, 당시 노무현 정부의 과학기술 경쟁력이 최고였다고?

 

더구나 노무현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때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어제(10일) 박기영 본부장 뒤에 병풍처럼 서 있었던 이른바 과학기술계 주요 인사의 면면이 바로 그 증거다. 지금 박 본부장을 지지하는 그들이 바로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과학기술계의 핵심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바로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함께 정리되어야 하는 ‘적폐’ 세력이다.

 

오명 과학기술부총리는 왜 ‘황우석 문병’을 갔을까?

 

이렇게 전제가 틀리니 그 다음은 길게 말할 것도 없다.

 

노무현 정부 때의 과학기술부총리 제도나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제대로 역할을 했다면 황우석 사태 같은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다. 당시 과학기술부총리나 과학기술혁신본부는 이 사태를 기획(박기영 본부장은 계속 자신은 ‘기획’만 있다고 하는데, 바로 이 ‘기획’이 제일 문제다)한 청와대의 주도에 속수무책이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게 오명 당시 과학기술부총리가 2005년 12월 8일 오전 황우석 박사가 입원 중이던 병실을 찾아간 이벤트다. 그 당시는 이름 없는 과학기술자의 노력으로 논문 조작의 증거가 하나씩 세상에 드러나던 상황이었고(그 최초 보도를 바로 내가 했다), 황 박사의 병원 입원은 진실을 은폐하려는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바로 그 시점에 과학기술부총리가 황우석 박사를 찾아간 것이다. 여러 요직을 거치며 감각 하나는 남보다 뒤지지 않았을 오명 부총리가 왜 그 시점에 그런 부적절한 처신을 했을까? 과학기술부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이렇게 귀띔한 적이 있다. “오명 부총리도 아주 곤혹스러워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청와대에서 압박을 했다고….”

 

문재인 대통령은 황우석 사태 때 ‘민정수석’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언급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박기영 본부장의 과보다 공을 높이 평가한단다. 도대체 과학계를 넘어 전 국민이 둘로 나뉘어 찬반 대립을 벌였던 그 끔찍한 황우석 사태에 책임이 분명한 박기영 본부장의 과를 왜 그렇게 낮게 볼 수 있단 말인가? 조심스럽지만, 한 가지 단서가 있다.

 

2005년 황우석 사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으로 우리는 민정수석이 커다란 권력을 가지고 여러 국정 현안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핵심 요직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즉, 황우석 사태처럼 노무현 대통령, 박기영 과학기술보좌관 등이 깊숙이 개입한 국정 현안을 살피는 책임이 문 대통령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책임도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황우석 사태를 한 나쁜 개인(황우석 박사)의 사기 행각 정도로 축소해서 생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자신과 노무현 대통령이 속았던 것처럼 당시 같이 청와대에 몸담고 있었던 박기영 본부장도 그저 ‘속은’ 피해자일 뿐이라고. 이런 인식이라면 박 본부장의 과가 적어 보일 수밖에 없다.

 

틀렸다. 황우석 사태는 한 나쁜 과학자의 일탈이 아니다. 청와대, 과학기술부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나쁜 과학자의 일탈을 부추기고, 방조하고 나중에는 은폐하려 시도했던 정치 과학 스캔들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스캔들의 핵심에 있었던 이가 바로 박기영 본부장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과는 정반대로 그의 과는 공을 압도한다.

 

누구나 잘못도 하고 실수도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잘못하고 실수하면 바로잡으면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더 늦기 전에 박기영 본부장의 임명을 철회해야 한다.
 

    강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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