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칼럼] 면발 한 오라기 콧구멍에서 줄줄줄 빼낸다 또 빼낸다!

 

한 촌사람 하루는 성내 와서 구경을 하는데

이 골목 저 골목 다니면서

별별 것 보았네

맛 좋은 냉면이 여기 있소

값싸고 달콤한 냉면이오

냉면 국물 더 주시오, 아이구나 맛 좋다

한 오라기 콧구멍에서 나오는 걸

손으로 빼냈네

줄줄줄 빼낸다 또 빼낸다

아직도 빼낸다

맛 좋은 냉면이 여기 있소

값싸고 달콤한 냉면이오
냉면 국물 더 주시오, 아이구나 맛 좋다

문득 어릴 적 킥킥대며 흥얼거리던 노래가 떠오른다. 아마도 이 노래에 나오는 촌사람은 함흥냉면을 먹었을 것이다. 면발이 얼마나 쇠심줄처럼 질겼으면 콧구멍으로 빼내고 빼내도 끊어지지 않았을까. 매운 면발이 다 빠지고 난 뒤, 콧구멍은 얼마나 맵고 시렸을까. 한참동안 마당에서 ‘냉면 먹고 맴맴’ 한 스무 바퀴는 돌았으리라.

함흥냉면은 감자나 고구마전분을 쓴다. 메밀을 약간 섞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 100% 전분을 쓴다. 면발이 엉겨 붙어 잘 섞이지 않는 면발은 전분이 대부분이라고 보면 된다. 북한에선 ‘감자농마(녹말)국수’라고 한다. 면발이 쫄깃하고 질겨 잘 끊어지지 않는다. 훌훌 먹다보면 국숫발의 3분의 1은 냉면 그릇에, 3분의 1은 입 속에, 3분의 1은 뱃속에 있다.

원래 함흥에는 ‘함흥냉면이란 이름의 음식’은 없었다. 함경도사람들은 그냥 감자전분 국수를 국물에 말고 그 위에 돼지고기를 얹어 먹었을 뿐이었다. ‘함흥냉면’이란 이름은 6.25전쟁 당시 함경도실향민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1951년 함경도분들이 고향과 가장 가까운 속초에 대거 자리 잡으면서 비로소 ‘함흥냉면’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속초 아바이마을의 3대째 내려오는 단천식당이나 신다신식당이 그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함경도사람들이 상권을 쥐고 있던 서울중부시장 주변 오장동도 마찬가지. 맛도 서울식으로 변했다. 원래 맵고 질기고 국물이 많던 것이 달달해지고 면발도 부드러워졌다. 국물도 사라졌다. 부산에선 부산식 소면국수와 어우러져 ‘부산 밀면’이 되었다.

함흥냉면은 일종의 감자국수라고 할 수 있다. 함경도 지방에서 겨울철 즐겨먹던 감자국수를 변형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함흥냉면 면발은 쫄깃하고 질겨 잘 끊어지지 않는다. 여기에 매운 양념(다대기)과 회(꾸미)를 얹어 비벼먹는다. 온몸에 진땀이 삐질삐질 배어나올 정도로 혀가 얼얼해야한다. 참기름 설탕 식초 겨자도 살짝 곁들인다. 회는 오도독오도독 씹혀야 제 맛이다. 회가 푸석푸석하고 간이 적당하게 배지 않은 것은 ‘자판기커피’나 마찬가지이다. 회는 거의 가오리나 간재미를 쓴다. 옛날엔 홍어를 썼지만 너무 비싸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수입홍어는 맛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속초 등에선 동해안에서 잡힌 명태나 가재미를 꾸미로 올리기도 한다.

검정색 ‘언 감자국수’의 면발은 찰지고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언 감자를 우려내어 녹말을 낸 다음에 끓는 물에다 국수를 뽑아서는 차디찬 콩물에 말아 먹는다. 위에는 검은 깨를 뿌리고 함경도식 갓김치를 얹어서 먹는다. 김일성주석이 그 음식의 유래를 말해주었다. “우리가 두만강 연안에서 항일 투쟁할 때에 인민들이 많이 도와주었소. 화전하는 인민들도 저이 먹을 것이 없는데도 우리가 지나가는 산길에다 표를 해두고 감자를 묻어 놓군 합네다. 눈이 한 길이나 쌓이고 땅은 꽁꽁 얼어붙어 있디, 감자를 파내면 시꺼멓게 얼어서 돌덩이야. 근거지로 짊어 지구 가두, 언 감자는 구워도 못 먹고 삶아도 못 먹어요.” -『황석영의 ‘맛과 추억’에서』

함흥냉면도 서울 4대천왕이 있다. 서울오장동의 흥남집, 신창면옥 함흥냉면과 꾸미로 서해간재미를 쓰는 명동함흥면옥이 그렇다. 종로4가의 곰보냉면을 넣기도 한다. 서울 오장동 함흥냉면집들은 결혼예식장 피로연에서 음식 먹듯 정신이 하나도 없다. 사람이 몰려서 먹고 나오기 바쁘다. 역사는 길지만 갈수록 그 맛이 뒷걸음질하는 느낌이다. 아직 어르신들이 많이 찾고 있지만, 회사원이나 젊은 층은 서비스가 좋은 명동함흥면옥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곳은 면발 육수 꾸미 양념이 잘 어우러져 일본인들도 많이 찾는다.

요즘 냉면집에선, 면발을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먹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후미진 골목담장에 그려진 가위가 떠오른다. 무섭다. 길가 전봇대에도 시퍼런 가위그림이 영덕대게처럼 눈 부릅뜨고 있다. 선주후면(先酒後麵)이라는데 술꾼들은 오싹하다. 맛이 싹 달아난다. 가위는 냉면의 천적이다. 가윗날이 닿은 면발에선 역한 쇠 냄새가 난다. 모든 면발은 쇠붙이가 닿는 순간 ‘철사’가 된다. 제발 냉면집에서 쇠붙이는 가라! 국수면발은 오래오래 살라는 장수의 상징이기도 하다.

물론 이론적으로 ‘젓가락과 냉면그릇도 스테인리스로 만드는데, 왜 같은 성분으로 만드는 가위에서 역한 쇠 냄새가 날수 있겠는가?’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 옛날 대장간에서 무쇠를 두드려 만든 가위가 아니라면, 요즘 가위에서 쇠 냄새가 날 리가 없다.

하지만 맛은 혀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심리적인 면도 상당하다. 한마디로 맛은 뇌가 느낀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혀는 입안에 들어온 음식자료를 뇌에 전달하는 것뿐이다. 가령 ‘신포도’나 ‘신 귤’은 말만해도 입에 침이 나오고, 눈이 사르르 감긴다. 임신한 주부가 신 맛 나는 게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임산부의 머리와 몸은 온통 신맛으로 꽉 찬다. 입에 침이 흥건히 괼 뿐 아니라, 몸은 달뜬다. 신맛은 짠맛, 쓴맛, 단맛과 다르다. 혀보다 사람의 감정에 의해 지배되는 정서적인 맛이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있다. 배고프면 뭐든 맛있다. 반대로 배부르면 진수성찬도 심드렁하다.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마음이 불편하면 맛을 못 느낀다. 똑같은 음식도 그날 기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옛날 어르신들은 가위로 냉면면발 자르는 걸 보는 순간, 머릿속에 ‘쇠 냄새’가 느껴진다. 더구나 옛날 가위는 무쇠로 만든 것이 대부분이었다. 배추김치를 그걸로 자르면 ‘신맛이 섞인 역한 맛’이 저절로 떠오른다. 젊은 층이라도 가위와 면발은 어딘가 역한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런 마음을 먹고 면발을 입에 넣는다면 어찌 쇠 냄새가 나지 않겠는가. 같은 물이라도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지만, 뱀이 먹으면 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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