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틱한 여운… 모호한 포즈로 조형미 극대화

이재길의 누드여행(19)

현실 속 초현실적인 아름다움, 누드

물질적으로 풍요로움으로 넘쳐난 당시 미국사회의 풍조 속에서 사진가 만 레이가 이상적 세계를 꿈꾸며 다다이즘(기존 사회적, 예술적 전통을 부정하면서 반이성, 반도덕, 반예술을 표방한 예술운동) 성향의 작품을 쏟아내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경제와 산업의 발달로 윤택한 삶을 살던 대중이 그의 절박한 작품철학에 큰 매력을 느낄 리 없었기 때문이다.

외로움 속에서 조금씩 창작의 고통에 지쳐가던 만 레이. 그는 미국의 대표적 미술가인 마르셀 뒤샹을 만나면서 본격적이고 폭넓은 작품 활동을 펼친다. 전쟁으로 혼돈의 시대가 도래한 당시 유럽에서 번지는 다다이즘에 매력을 느낀 만 레이는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다.

파리에서 패션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하던 그는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초상사진을 촬영하게 되는데, 그것은 달리와 맺는 깊은 인연의 시작이었다. 달리의 파격적인 예술관은 그의 작품 활동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만 레이는 사진의 원리를 이용해 특수 암실기법을 고안했다. 사진 속 여인의 형체를 통해 그는 인간존재에 내재된 본질을 초현실적으로 투영하는 한편, 그 절대적 가치를 증명하고자 하였다. 당시 만 레이는 스튜디오 직원을 두었는데, 오늘날 20세기의 대표적인 사진가들로 알려진 빌 브란트, 베르니스 에보트 등이 바로 그들이었다.

만 레이의 사진 속 여인. 마치 열렬한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 속 주인공인 것만 같다. 그의 여인들은 당시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 속 모델로 활동하였는데, 스튜디오를 자주 오가며 그와의 사랑을 키워나갔다.

가녀린 어깨와 목선, 부드러운 허리가 생산해내는 곡선은 현실을 초월한 듯한 환상과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두 눈에 들어온 사랑하는 여인의 누드는 승화된 감동 그 자체였다.[사진1]

‘앵그르의 바이올린’은 그의 대표적인 누드사진 중 하나다. 여인의 누드가 품어내는 완벽한 곡선은 바이올린의 부드러운 선과 형태를 연상케 하면서 여체의 신비로움을 연출하였다. 빛과 그림자를 통해 빛나는 여체의 섬세함과 부드러운 질감은 사진으로 담아낼 수 있는 섹슈얼리즘의 절정체이다.

만 레이는 여체를 성적인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다.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여인의 누드야말로 삶의 가치를 증명하는 내면의 본체임을 강조하였다.

카메라 프레임 한 가운데에 있는 여인을 향해 빛이 향한다. 이는 존재의 미적 가치를 증명하는 만 레이만의 표현 방법이었다. 혼란스럽고 어두운 사회의 공기 속에서 빛이 되어주는 존재가 바로 여인의 누드임을 증명하는 순간이다.

여인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훑어 내려가는 그의 관능적인 시선은 독특한 암실기법을 통해 오묘한 흑과 백으로 묻어난다. 카메라를 응시하지 않은 채, 누구도 의식하지 않은 채 자연스러워 보이는 여인은 뇌쇄적인 매력을 품었다. 모호한 여인의 포즈를 통해 누드의 조형미와 형태미가 극대화되면서 여인의 손과 발에서도 에로틱한 여운이 전해진다.[사진2] 성적인 상상력과 욕망이 자극된다.

사진 한 장으로 펼쳐지는 그의 초현실적인 사랑이야기는 존재의 낭만과 순백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만 레이의 사진 속 누드의 원초적인 아름다움은 존재가 지닌 감동이 되었고 시대를 변화시켜왔으며 오늘날 그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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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몸만 보라” 얼굴 없는 여인의 절정 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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