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신상담…. ‘주사기’가 부른 위기를 기회로

 

한미영의 ‘의사와 환자 사이’

‘원장선생님이 주사기를 재활용할 것을 지시한 후로부터 주사 놓을 때 마다 종종 지켜보시곤 했어요’라고 말한 병원직원의 푸념을 들은 적이 있다. 지시했던 의사는 명문의대를 나왔고, 사모님 역시 간호학과를 나와 병원 살림을 돌보면서 바늘만 바꿔 주사기 재사용을 거듭 강조 했었다고 한다.

다행히 20여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주사기 재사용의 사건처럼 예전 방식 그대로 병원을 운영하는 의료진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세계적인 의료기술을 자랑하던 대한민국이 주사기 재사용이라는 오명으로 제대로 창피를 당할 듯하다. 어쩌면 이렇게 재발되는 사건들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이면에 두꺼운 화장으로 가린 우리 민낯이 아닌가 싶다.

의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의 한 수위 더 높아졌다. 성추행, 감염사고, 황당한 의료사고들이 그간 쌓아온 신뢰마저 한 순간에 무너뜨리기에는 충분했다. 이제는 의사들 스스로도 더 이상 미룰 수 없음을 인지하고, 전문집단으로써 자율징계가 필요하다는 의사 내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생을 위해 가지치기는 가장 적기인 듯 하다. 내 식구 감싸기가 아닌 내 식구 단도리로 돌아섰다. 이번 참에 자율징계가 나오지 않았다면 자신의 잇속에만 관심이 있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비춰질 수 있었을 것이다.

다나의원 사건 이후 보수교육제도 개선과 동료감시 등 다양한 방법들이 모색되고 있다. 그러나 반복되는 문제에 명쾌한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의사 한 사람이 아닌 의료계 모두가 신뢰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료진들이 인지한 덕분이다.

심리학자 데니스 웨이틀리에 의하면 비관론자들은 모든 기회에 숨어 있는 문제를 보고 낙관론자들은 모든 문제에 감춰진 기회를 본다고 한다. 우린 철저한 비관론자 입장도 필요하다. 의료인의 전문성에 따른 문제의식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추락한 신뢰를 다시 끌어 올리기는 힘들다는 것 또한 알아야 한다.

필자는 비록 의사는 아니지만 대한민국에서 의사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저수가로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었던 그 이면에는 몇 천원진료에도 소신을 다해 진료에 임해준 많은 의사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 이었을 것이다.

다만 이번 사태에 기회라고 본다면 국민들이 저수가에 고충을 인지했다는 점이다. 의료진의 와신상담(臥薪嘗膽)하는 노력이 따른다면 보험수가를 올려야 할 당위성을 주장할 때 국민들이 힘을 실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공공성을 이어가는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는 공급자와 수요자가 한편이 될 때 성장하고 그 혜택을 누리는 범위가 커질 것이다. 의사이든 환자이든 서운한 대접에 투정부리기 보다 대우를 받기 위해 우리가 서로 양보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을 하는 게 차라리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같은 편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설령 같은 편이 아닐지라도 목적이 같다면 전략적으로 한편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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