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먹고 터지는 의사… ‘환자의 품격’ 아쉽다

 

한미영의 ‘의사와 환자 사이’

최근 한 주 동안 우연치 않게 응급실 폭력에 대한 기사와 폭행을 당한 의사의 억울함이 적힌 글을 보게 됐다. 연달아 ‘서비스’란 용어에 대한 거부감을 갖는 의사들의 솔직한 마음을 담은 칼럼을 각기 다른 신문사에서 2회에 걸쳐 읽게 됐다.

누구는 소비자의 이름으로 서비스제공자에게 폭력과 같은 불법을 행사하고, 누구는 서비스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의료진을 함부로 대하고 저울질 했을 것이다. 1년 넘게 ‘의사와 환자’ 사이라는 글을 연재하면서 서비스라는 말을 자주 써왔던 필자로서는 의료진의 태도를 운운하며 은연중에 강요된 적이 없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우리나라는 특이한 의료환경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국민 대다수는 의료서비스가 공공재라는 사실조차 모른다. 정부에서 국가의 보험수가로 의료기관의 이용과 과잉 서비스공급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또한 의사만이 의료기관을 열 수 있으며 의사만이 병원의 수장이 되도록 법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는 자본가의 개입을 철저히 차단함으로써 의료가 상업적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 우리 국민이 저렴한 가격으로 널리 혜택을 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완벽한 제도라고는 보기 어렵지만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익관점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의료진에게는 한정된 시간에 한정된 비용으로 최상의 의료를 제공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며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의사와 병원의 숫자가 많아짐으로써 환자의 선택권이 다양해졌지만 공급자인 의료진들은 경쟁에서 치열하게 생존해야 하는 악조건을 갖는 곳이 우리나라이다.

덕분에 환자는 별다른 비용부담 없이 환자 자신에게 맞는 의료진을 찾을 수 있고, 병원자율에 맡겨진 비보험 치료비용과 의료진의 실력에 견주어 치료병원을 선택함으로써 보다 현명한 소비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됐다. 공급자가 많아진 덕분에 수요자가 누릴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커 진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은연중에 백화점에서 물건을 선택하듯 구매력을 갖는다는 갑의 위치에서 의료진을 단순 공급자로 보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의료서비스는 일반 상품과 그 성격자체가 다르다. 물건은 하자가 있거나 불만족스런 경우가 생긴다면 언제나 반품이 가능하다. 반면에 의료영역에서는 생명과 직결된 의료행위에 대해 반품과 철회는 불가능에 가깝다. 의사와 환자는 소비행위의 거래관계가 될 수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의사와 환자 사이는 서로에 대한 예의를 다하며 신뢰를 지켜야 성립이 가능한 서비스제공자와 공급자일 뿐이다. 의료진을 선택했다면 최적화된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력하고 신뢰해야 하는 것이 보호자와 환자 당사자가 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환자에게 의료진의 모든 권위를 절대적으로 수용할 것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서비스를 운운하며 의료진의 진료소신과 절차를 무시하며, 환자로 지켜야 할 신뢰를 스스로 져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의료진들은 서비스라는 단어와 함께 ‘고객’이라는 단어 역시 강한 거부감이 있다. 고객으로서 서비스를 당연시 여기고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상업주의적 문화에 대한 거부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환자는 고객으로 불리 우는 것에 익숙해져 있고, 의료는 서비스로 해석하는 것이 우리네 국민들의 정서가 되어 버렸다. 현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의료진과 환자들이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환자들은 ‘서비스’라는 단어를 의료진의 심적인 지지와 격려로 받아들이고, 약자를 배려하는 의료진의 노력으로 해석한다. 고객이라는 단어 역시 익숙한 단어인 만큼 환자에 대한 극존칭으로 받아들인다. 중요한 것은 단어의 쓰임과 사전적 해석이 아니라 환자가 의료진에서 거는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의료현장에서는 의료진의 바쁘디 바쁜 사정이라는 게 있고, 환자의 말 못할 사연이라는 것이 공존한다. 서로가 알아주기를 바라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오해는 쌓이고 갈등은 불신으로 촉발돼 비윤리적인 행위인 폭행과 폭언으로 발현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완벽한 서비스를 받기 원한다면 환자 역시 갖추어야 할 품격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며, 의료진들 역시 환자가 소홀함을 느끼지 않도록 마음읽기에 에너지를 할애해야 할 것이다. 서로가 관심을 갖고 바라봐야 생각과 마음이 통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는’ 소통의 기본원칙을 지키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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