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진정 원하는 것은…. 못 믿을 남자의 고백

배정원의 Sex in art(18)

오필리아-남자의 사랑고백

“꽃 속에 파묻혀

저승길 떠나세,

사랑의 눈물은

비 오듯 하고…”

물속으로 잠겨가는 가련한 여인이 낮은 음성으로 읊조리는 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발랄하게 지저귀는 종달새같이 아름다운 아가씨가 강가에 서있는 버드나무 가지에 화관을 걸어주려다 물에 빠졌다. 풍덩이며 물 밖으로 나오려 애써야 당연한 일인데 뜻밖에 그녀는 익사를 알지 못하는 어린 아기처럼 그저 무력하게 차가운 물속으로 잠겨가고 있다.

그녀가 입은 금빛 수가 섬세하게 놓인 고풍스런 드레스는 한껏 부풀어 물 위에 펼쳐져 있으나 곧 물을 흠뻑 빨아들인 드레스 자락이 그녀를 깊은 강물 속으로 끌어 들일 것이다. 그녀의 주위로 그녀가 조금 전까지 들고 있었던 화관의 붉고 노랗고 파란 작은 꽃들이 흩어져 검푸른 강 위에 빛을 잃어 가는 그녀를 애써 장식해 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의 곁을 지켜주는 꽃들은 팬지, 붓꽃, 양귀비, 물망초 꽃들로, ‘나를 잊지 말아요’, ‘사랑의 배신’, ‘절망’, ‘젊어서의 죽음’을 의미하는 꽃말이 그녀의 현실을 설명해 주고 있다.

넋이 나간 듯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고 눈빛은 이미 초점을 잃었지만 볼에는 발그레한 홍조가 아직 남아 있는 어린 처녀이다. 금빛 부드러운 머리는 풀어 헤쳐져 물 위에 떠 있고, 그녀의 두 손은 자신을 떠나간 그 무언가를 붙잡고 싶은 듯하나 그럴 수가 없었던 듯 무력해 보이기만 한다.

‘오필리아’라는 제목의 이 그림을 그린 이는 존 에버렛 밀레이(1829-1896)이다.

존 에버렛 밀레이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미술신동으로 대접받았던 영국의 화가로, 철저한 관찰과 계획 아래 그림을 그렸는데, 여름철에는 풍경을 스케치하고 겨울철에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그려진 풍경의 스케치 위에 형상을 채워 넣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다.

밀레이는 당시를 주름잡던 미술비평가 존 러스킨의 비호 속에 라파엘 전파의 활동을 펼쳤는데, 나중에 밀레이가 러스킨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러스킨과 결별했으며, 1855년에는 러스킨의 아내와 결혼했다. 그는 후에 영국 왕립미술 아카데미의 회장까지 되었으며 최초로 세습되는 작위를 받은 화가였다.

‘오필리아’는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유명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희곡 ‘햄릿’ 속에 나오는 비련의 여인으로, 연인의 배신으로 결국 죽음을 맞게 되는 그녀의 가련한 이야기는 라파엘전파 뿐 아니라 많은 화가들로 하여금 그녀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싶게 했다.

그런데 그 많은 오필리아 중에 밀레이의 것이 가장 오필리아의 슬픈 삶을 극적으로 보여 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림 속의 오필리아는 청초하며, 아름다우며, 관능적이며 비극적이다.

라파엘 전파는 그림의 인물 뿐 아니라 세심하고 사실적인 배경의 묘사에 힘을 쏟았는데 밀레이 역시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먼저 배경이 될 곳을 찾아 다녔고, 영국의 서리 근교의 호그스밀 강가에서 하루 11시간 씩 넉 달 동안 배경을 그렸다고 한다.

또 오필리아가 물 위에 잠겨가는 모습을 잡아내기 위해 모델을 며칠이나 드레스를 입은 채 물을 채운 욕조 속에서 포즈를 잡게 해 결국 그 당시 최고의 뮤즈였던 모델을 독감에 걸리게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 오필리아의 모델은 바로 엘리자베스 시델로 당시 라파엘전파의 화가들이 우아한 기품 속에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그녀를 모델로 그리고 싶어 했고, 실제로 그렸다. 그녀는 나중에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와 결혼했다. 그런데 마치 이 그림 속 오필리아처럼 시델은 로제티의 바람기와 아기를 사산한 충격을 이기지 못해 몰핀 과다 복용으로 자살하고 마는 비극적인 여인이 되었다.

‘햄릿’은 원래 바이킹의 전설로 덴마크 엘시노의 크론볼성이 무대이다.덴마크에서는 ‘암레드’라는 햄릿과 같은 줄거리의 이야기가 오래된 전설로 내려왔는데,셰익스피어가 해피엔딩인 전설을 복잡한 사색형 인간인 햄릿의 비극으로 재탄생시켰다고 한다.

부친을 암살한 숙부가 왕비인 어머니와 결혼하면서 햄릿은 어머니와 자신의 왕위를 잃어 버렸다. 그런데다 독약으로 동생에게 죽임을 당한 아버지 햄릿왕이 망령으로 햄릿 앞에 나타나 복수를 부탁하면서 비극이 완성된다. 햄릿은 유약하고 생각이 많은 젊은 왕자로(그다지 젊지는 않다. 서른살이 미처 못 되었다고 하니까)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미친 척을 하며 복수를 꾀하여, 결국 형을 죽이고 자신의 왕위를 가로챈 숙부와 어머니, 오필리아의 아버지와 오빠, 오필리아, 그리고 햄릿 자신까지 모두 죽게 만드는 최고 비극의 주인공이다.

그러고 보면 요즘 우리나라에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막장드라마의 시조가 셰익스피어라고 할 만큼 그의 희곡에는 근친상간, 복수, 욕정 등이 다 들어 있다.

어쨌든 순수하고 유약하며 온실 속의 화초같이 자라 보수적인 오필리아는 햄릿의 뜨거운 사랑고백을 받는다. 햄릿은 그녀를 위해 편지와 보석 목걸이 , 반지 등의 선물 공세를 퍼붓는다. 물론 사랑한다는 속삭임도 빠지지 않는다. 그녀는 햄릿이 자신을 사랑하는지 확신을 갖지 못하지만 그래도 한창 사랑의 설레임 속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재상의 딸이었고 햄릿은 한 나라의 왕세자였다. 둘의 사이를 알게 된 그녀의 오빠 레어티스는 오필리아에게 ‘이루어 질 수 없는 사이’라며 경계하고, 재략가인 아버지 폴로니어스는 ‘햄릿과 만나지 말라’고 명령을 내린다, 양가집의 반듯한 딸인 오필리아는 아버지의 말대로 햄릿에게 절교를 고한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친구들도 다 잃고, 오직 사랑하는 연인 오필리아에게 위안을 받고자 했을 햄릿은 오필리아의 절교를 들은 후, 더욱 절망한데다 어차피 복수를 위해 미친 척을 하기로 마음먹었기에 오필리아를 멀리하기 시작한다. 사실 헤어질 마음보다 햄릿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절교를 선언했던 오필리아는 햄릿보다 더 실연의 상처를 받은 듯 보인다. 또 설상가상 햄릿이 실수로 오필리아의 아버지를 죽이자 연약하기만 한 오필리아는 실연에다 아버지의 죽음까지 겹친 충격으로 급기야 미쳐 버리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며 들판을 헤매어 다니다가 자신이 만든 화관을 강가에 선 버드나무 가지에 걸어 주려다 미끄러져 물에 빠져 죽음을 맞는다. 참으로 안쓰러운 아가씨이다.

이번에 ‘오필리아’에 대한 칼럼을 쓰기위해 다시 읽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아주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했는데, 바로 햄릿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오필리아가 말했을 때 오빠인 레어티스가 들려 준 조언이다.

“햄릿이 너를 사랑하는 것은 분명하겠지만 왕자라는 지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지금의 사랑고백은 한때의 기분, 청춘의 혈기야. 제비꽃처럼 잠시만 향기로울 뿐 오래가지 못하지…. 그분의 노래에 솔깃해져서 무턱대고 졸라대는 바람에 보석 같은 정조를 내어주는 날이면, 처녀의 몸으로 얼마만한 치욕을 입을 것인지 생각해 봐라. 그러므로 조심하렴, 청춘이란 상대방이 없어도 저절로 욕정이 일어난단 말이다.”

그 시대 귀족청년으로 여성편력이 많았을 것이 분명한 레어티스의 입을 빌어 셰익스피어는 섹스를 얻고자 사랑을 과장하거나 심지어 ‘사랑한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하는 남자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꼬집는다.

남자들은 감정적인 결합이 깊지 않아도 -사랑을 확신하지 않아도- 여자보다 섹스를 쉽게 갖는다거나 상대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도 섹스를 원한다는 연구가 있다. 대개 남자들은 여자보다 서둘러 사랑고백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내가 가르치는 남학생들에게 물어봐도 대답은 그러했다. 100% 사랑하지 않아도 섹스를 얻을 수 있다면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편지를 받거나’, ‘선물을 받고’, ‘산책을 함께 하는 것’이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는 여자들과 달리 남자들은 ‘그녀와 섹스를 하는 것’을 낭만적인 일이라 생각한다고 대답한다. 확실히 남자가 생각하는 ‘사랑’은 섹스와 그리 멀지 않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사랑한다’는 말을 할 때 그 말 안에는 ‘당신과의 섹스를 원합니다’란 말이 내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아두는 것이 좋겠다. 그러므로 남자가 사랑을 고백하더라도 정말 내가 그를 사랑하는지, 그의 사랑이 간절한지를 알아보는 안목은 여자에게 더욱 필요하다는 뜻이렸다.

그럼에도 ‘반짝이는 별들을 의심하고, 하늘을 도는 태양을 의심하고, 진리마저 못 믿을 지라도 나의 사랑만은 믿어주오…이 육체가 살아있는 한 영원한 당신의 종’이라고 당신의 그가 햄릿처럼 달디 단 고백을 해 온다면 ‘To be or not to be…그것이 문제로다……!’

글 : 배정원(성전문가, 애정생활 코치,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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