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엔 무엇이… 미지의 문 앞, 무거운 여심

배정원의 Sex in Art(14)

 

『프시케』 신부의 불안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한 젊은 여자가 붉은 장미꽃 한 송이를 손에 쥔 채 아름다운 정원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막 들어가려는 참이다. 뺨을 발그레한 홍조로 물들인 아름답고 청초한 그녀는 그러나 왠지 근심에 차 있는 얼굴이다. 그녀가 살짝 밀어낸 문 안으로 보이는 잘 정돈된 정원에는 흰 장미와 분홍 장미가 어울러져 피어있다. 정원 안 멀리 하얀 색의 이탈리아 식 건물이 서 있지만 밝은 색채의 경쾌함보다 굵은 기둥의 육중함과 반듯함이 더 눈에 들어오는 것으로 미루어, 아직도 미래에 대한 분홍빛 꿈을 지니고 있을 어린 그녀를 짓누를 듯한 무거운 공기가 느껴진다.

문을 살짝 밀어 곧 정원 안으로 한발을 내딛고 몸을 밀어 넣을 그녀는 분홍색 화사한 드레스나 아름답게 홍조 띤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게 불안해 보이고 우울해 보인다. 마치 화사하게 탐스런 장미꽃들이 만발한 문 뒤에, 혹은 격조 있는 하얀색 궁전 안에 그런 풍경과는 결코 어울리지 않을 끔찍한 괴물이 숨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발걸음도 몸짓도 조심스럽기만 하다.

이 그림은 영국의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큐피드의 정원으로 들어가는 프시케』이다. 에로스와 프시케의 이야기는 2세기경 로마에 살았던 철학자이자 작가, 법학자였던 루치우스 아폴레이우스의 저서 ‘변신’이라는 산문집에 소개된 유명한 사랑 이야기이다.

큐피드는 사랑과 욕정의 여신 비너스와 전쟁의 신 아레스의 잘생긴 아들로 활을 가지고 다니며 장난치듯이 화살을 쏜다. 그의 금 화살에 맞으면 사랑의 콩깍지가 씌운 듯 눈앞에 있는 사람을 열렬히 사랑하게 되지만, 은 화살에 맞으면 앞에 있는 사람을 이유도 없이 싫어하게 만든다는 분별력 없는 열정의 신이다.

‘영혼’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프시케 공주는 아주 아름다운 소녀였는데, 너무나 아름다워 미의 여신인 비너스가 그녀를 질투할 정도였다. 비너스는 아들 큐피드에게 그녀를 화살로 쏘아 가장 못생긴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하라고 부탁한다. 어머니의 부탁을 들어 주기 위해 프시케에게 간 큐피드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빠져 자기 화살에 되레 자신이 상처를 입고 만다.

이때부터 프시케를 너무나 사랑하게 된 큐피드는 델포이 신전으로 찾아가 아폴론에게 ‘프시케의 운명이 사람 남자로부터는 사랑을 받지 못하며, 피테스 산 절벽에 데려다 놓으면 무서운 괴물이 나타나 아내로 맞을 것’이라는 거짓 신탁을 내려달라 부탁한다.

이 아폴론 신의 신탁을 들은 왕은 어쩔 수없이 세 딸 중 가장 사랑했던 프시케를 신부차림으로 아름답게 꾸며서는 피테스 절벽위에 데려다 놓게 하는 데, 프시케를 수행했던 모든 사람들은 괴물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녀만 남겨 놓고 도망쳐 버린다. 산 위에서 혼자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녀를 서풍 제퓌로스가 가볍게 태워 큐피드의 아름다운 궁전으로 데려간다. 괴물과의 결혼을 앞두고 며칠을 두려움에 떨며 긴장한 그녀가 지쳐 풀밭에서 잠들었다가 깨어나 보니 아름다운 궁전 앞이었다.

자신에 대한 신탁을 알고 있는 그녀는 근심에 가득 찬 얼굴로 지금 궁전으로 가는 문을 열고 들어서려는 참이다. 괴물의 아내가 되어야 할 자기의 끔찍한 운명을 받아들인 프시케지만, 궁전 안에서 어떤 괴물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앞으로 자신은 그 괴물과 어떻게 살게 될지, 혹은 얼마나 살아 있을 수 있을지 그녀를 옭죄어 오는 두려움을 안고 자신의 불운이 기다리는 궁전으로 향하는 문을 지금 열고 있는 것이다.

화가 워터하우스(1849~1917)는 라파엘전파의 일원으로 라파엘로 이전의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의 모티브와 스타일을 미적인 모범으로 격상시키려 노력한 사람이다. 워터하우스는 번-존스에게 특히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으나 영국사람이었던 그는 고대 그리스신화 뿐 만 아니라 아서왕 전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문학을 주제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워터하우스의 그림은 다른 라파엘전 화가들의 작품에 비해 높은 완성도를 보이며, 늘 여성의 우울한 모습에 관심을 가지고 그림을 그려 냈다.

프시케의 운명은 큐피드의 간절한 부탁을 받은 아폴론 신의 거짓 예언으로 시작되는 불운의 연속 끝에 결국 사랑의 승리로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장미꽃으로 만발한 궁전으로 들어간 그녀는 어둠속에서 신랑을 맞는다. 혹시 어머니 비너스가 그토록 미워했던 프시케를 자신이 아내로 맞은 일을 알게 될까봐 두려운 큐피드는 밤에만 그녀를 찾았기 때문이었는데, 큐피드는 프시케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면 불행이 찾아온다고 경고한다.

참으로 이기적인 사랑이다. 프시케는 남편의 얼굴이 너무나 궁금했지만 다정하면서도 열렬하게 자신을 사랑하는 남편을 자기 또한 사랑하게 되었기에 어둠속에서만 남편을 만질 수 있고 안을 수 있는 것에 순응하고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프시케는 언니들을 만나러 집에 돌아간다. 프시케가 잡아먹히지 않고 너무나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게 참을 수 없었던 시기심 많은 언니들의 꾀임에 빠져 그녀느 촛불을 켜고 남편의 얼굴을 확인하기에 이른다. 괴물인 줄 알았던 남편의 얼굴은 뜻밖에도 너무나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그 잘생긴 얼굴에 도취되어 있다가 뜨거운 촛농을 그의 가슴에 떨어뜨려 버린다. 이에 놀란 큐피드는 자신의 말을 어기고 의심한 그녀에게 실망하여 그녀를 떠나 버린다. 그렇게 모질고 이기적인 남편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프시케가 겪은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을 죽도록 미워하는 시어머니 비너스에게 찾아가 온갖 학대를 받으며 네 가지의 어려운 과제를 해내며, 지옥에까지 다녀온 프시케는 결국 그녀의 진심어린 사랑을 믿게 된 큐피드와 다시 만나서 행복하게 살았다. 뿐만 아니라 쥬피터(제우스)는 큐피드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줘 그녀에게 영생을 선물한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큐피드와의 사이에서 예쁜 딸 ‘볼로타스(쾌락)’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아니 영생을 받았으니 아직도 살고 있을 것이다.

프시케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미녀와 야수, 신데렐라 등 서구의 많은 전설과 민화가 오버랩된다. 아마도 이 신화 속 여러 흥미롭고 매력적인 이야기 코드에 영향을 받은 탓이겠지만, 그만큼 프시케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는 그야말로 역경을 이긴 사랑의 위대함이며 해피엔딩이다.

실상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들은 누구나 앞으로 다가올 알 수 없는 미래에 두려움과 불안을 느낀다. 대부분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결혼을 결정하지만 ‘네’ 라고 대답하고 성혼선언이 낭독되면 그야말로 맨 정신으로는 빠져나오지 못할 강력한 울타리 속에 갇힐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줄리아 로버츠와 리처드 기어가 주연한 영화 ‘런어웨이 브라이드’에서는 결혼식을 앞둔 신부가 무려 세 번이나 신부대기실에서 도망을 가고, 실제로 2011년 모나코의 국왕 알베르 2세와의 결혼을 앞두고 약혼녀였던 샤를렌 위트스톡이 고향으로 도망치려던 사건이 있었다. 물론 영화 속에서 상습적으로 도망치던 예비신부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으로 사랑받지 못하고 상대에게만 맞추려는 자신을 깨닫고’ 도망가고, 모나코의 예비신부는 남편 될 알베르 국왕의 ‘신실하지 못한 바람기’ 때문에 도망을 갔지만, 분명한 이유 없이도 결혼을 앞둔 신부들은 불안에 휩싸인다.

무엇보다 결혼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는 ‘네’ 라고 대답하기 전에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그것은 사랑에 빠졌다는 것 외에 내가 그와 결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적령기이기 때문인지, 결혼이 인생의 과정 중에 꼭 거쳐야 하는 관문이어선지, 혼자 사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서인지, 지금의 나와 가족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어선지, 독립하고 싶어선지, 자신의 종교 때문인지, 삶의 경제적, 사회적 안정감을 얻기 위해선지, 보호받고 안전함을 원해서인지, 아이를 갖고 싶어선지, 그에게 사랑과 헌신함을 증명하고 싶어선지, 그와 동반자로서 인생의 끝까지 같이 가고 싶어선지 하는 것들이다.

결혼은 환상이 아니다. 그것은 발그레 홍조를 띤 앳된 얼굴로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들어가서는 갖은 어려움을 겪고라도 현명하고 꿋꿋하게 지켜내겠다는 다짐이 없이는 완성하기 어려운 만만치 않은 현실이다. 그래서 어떤 나라에서는 결혼식이 끝나면 신랑과 신부가 손을 꼭 잡은 채 빗자루를 뛰어넘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결혼 안에는 이렇게 자잘하고 사소한 어려움부터 입술을 질끈 깨물고야 넘어설 수 있는 역경이 있을 것이며, 그러기에 무엇보다 큰 용기와 지혜가 필요한 것이란 의미를 알려주기 위함이다.

미지의 문을 여는 신부들이 프시케 같은 담대함으로 빗자루를 뛰어 넘을 수 있기를…!

부디 걸려 넘어지지 않기를…!

글 : 배정원(성전문가, 애정생활 코치,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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