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질문 금지법’과 의사의 매너

 

한미영의 ‘의사와 환자 사이’

최근 의료법 개정안으로 발의된 가칭 ‘혼인 여부 질문 기록 금지법’이 산부인과 의사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발의된 개정안은 혼인 여부를 질문하지 말 것과 이에 대한 기록조차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발의 취지는 임산부로서 미혼모의 인권을 보호하고 사회적 편견에서 오는 역차별을 차단하는 데있다. 진료과정에서 미혼모가 느낄 수 있는 수치심과 심적 부담감을 줄이자는 게 본래 목적이다.

그러나 진료현장에서는 발의된 법 자체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왜냐하면 미혼과 기혼여부에 따라 진료와 검사방법이 달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진료방법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 법 통과 시 문제가 많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미혼모 입장에서는 의사가 기혼과 미혼여부를 굳이 따져주지 않고 진료해 준다면 임산부로서 좀더 당당하게 심적인 위축감 없이 진료를 받고 출산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혼모의 마음도 십분 이해할 만 하다.

인권보호라는 명목 하에 법으로 질문을 금지한다는 현실이 조금은 씁쓸한 기운을 남긴다. 미혼모에게 진료에나 대화에나 더욱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이를 법적으로 강제해야 한다는 것은 진료현장에서 의사와 환자 사이에 오가는 대화가 얼마나 팍팍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환자에게는 말 한마디, 표정하나, 제스처 하나까지 환자가 위축 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건강을 의사에게 의지토록 하게끔 신경 써야 하는 것이 의료진의 기본 에티켓일 것이다. 에티켓을 지키지 못할 경우 사소한 오해로 환자는 더 큰 상처를 받을 수 있고 배려 없는 언행으로 환자의 자존감은 한 순간에 무너지기도 한다.

17세기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궁에서 지켜야 하는 법도와 규칙을 명시한 것에서 출발한 에티켓은 여전히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필요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뜻의 단어로 통용되고 있다. 이러한 에티켓은 지키지 않을 시 상대방이 난처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게 마련이다.

이와 비교해 매너는 사람의 행동방식과 습관을 일컫는 말로 강제성은 없지만 상대방을 배려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사람 사이의 관계를 더욱더 친밀하게 이끄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매너는 ‘있다’와 ‘없다’의 개념보다는 좋다거나 나쁘다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렇게 되면 의료진의 매너가 나쁘다라는 것은 서비스가 좋지 못하다라는 개념과도 상통할 수 있다.

의료서비스에서는 에티켓과 매너가 적절히 공존함으로써 예의와 배려가 함께하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에티켓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에티켓으로 지켜져야 하는 것은 바로 환자에게는 프라이버시가 될 수 있다. 환자의 개인정보나 질병내용이 환자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거나 들려서는 절대 안 된다. 가령 타인이 악용할 수 있는 개인 정보를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부른다던가, 노출되면 곤란한 환자의 병명을 아무 거리낌 없이 말하는 경우처럼 의료진의 행동이 각별히 조심해야 할 때가 있다.

진료실에선 의료진과 환자가 나눈 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없도록 프라이버시를 보호해 줘야 한다. 의료진끼리의 대화라도 제 3자가 주위에 있다면 환자에 관한 이야기를 가급적 자제해주는 매너는 있어야 할 것이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본의 아니게 듣는 사람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바로 환자의 컨피덴셜(기밀보호)는 진료내용의 심각성과 상관없이 기본으로 지켜줘야 하는 에티켓이라 할 수 있다.

입원 중에 환자가 입원실을 벗어나 누운 채로 이동하고 대기할 경우 최대한 환자의 신체부위가 노출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하고 혼자 방치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환자가 24시간 상주하는 입원실의 경우 각별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

하지만 환자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본다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더 나은 서비스를 찾아가는 것이 의료진 스스로가 환자로부터 신뢰를 쌓는 일이 될 것이다. 병원에서 의료진이 지켜야 할 에티켓과 매너는 어쩌면 환자보호차원에서 반드시 업무로 이행해야 하는 영역이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환자의 정보를 흘리는 경우가 없는지, 환자가 수치스럽고 부끄러워하는 일을 없는지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때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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