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에게 환자는 둘째, 먼저 직원에 잘 하라”

 

한미영의 ‘의사와 환자 사이’

지난 해 필자는 의사의 욕설로 인해 직원과 마찰을 빚은 병원에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직원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 급기야 ‘욕 하지 말라’는 캠페인까지 벌이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당시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했던 터라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큰 고민이었다. 자료를 찾는 데에도 꽤나 어려움을 겪었던 강의로 기억된다.

그 가운데 필자는 해당 병원에서 실제로 진료를 받으며 현장 병원모니터링을 했다. 욕하는 의사와 함께 일하는 직원들의 분위기를 엿보기 위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환자를 대하는 직원들의 얼굴에는 웃음기 없이 피곤함이 역력했다. 직원들을 대하는 의사의 언행은 환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한 계기가 됐다.

이른바 땅콩회항 ‘갑’질이 세간의 화두로 떠들썩 할 때 의사의 거친 언행으로 인해 심기가 불편했던 직원들의 하소연도 곳곳에서 덩달아 매스컴을 탔다. 얼마나 난폭한 언행을 하기에 직원들이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워 할까?

최근 국내에 소개된 [환자는 두 번째다]라는 책에서 공동저자 폴 슈피겔만과 브릿베렛은 환자의 진정한 서비스 만족을 위해선 실제 서비스를 행하는 직원의 업무 몰입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직원들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업무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결국 환자를 위하는 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의사는 환자보다 직원을 더욱 잘 돌봐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직원에게 욕하는 의사들은 직원의 업무 몰입도를 방해하고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직원들을 양산할 수 밖에 없다는 해석이 더해진다.

병원도 감정노동자들이 일하는 서비스업이다. 심기 불편한 고객의 진상 짓도 참아내고 웃어야 하는 곳이 바로 병원이기 때문이다. 환자고객을 대상으로 따스한 미소와 부드러운 말투로 고객을 대해야 하는 전형적인 감정노동자가 필요한 서비스업이다.

이러한 의료분야의 감정노동자들에게는 언행이 까칠한 의사를 상대해야 하는 업무도 있다. 의료서비스 업은 의사의 지시로 모든 치료활동이 시작되고 종료된다. 이 과정에서 의사의 거친 말투에 노출된 직원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어야 하는 감정노동자가 된다. 그러나 직원들의 불편한 심기는 은연중에 드러나게 돼 있다. 오히려 고객 보다는 같은 서비스 공급자로부터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 의학드라마를 보면 신참 의사가 선배의사에게 혼나는 장면으로 정강이를 차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로서 신중함을 강조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소홀함이 없어야 함을 강하게 훈육한다. 그도 그럴 것이 도제식 교육을 받아온 의사들은 위계질서가 분명하다. 이러한 수련현장에서는 교수나 선배의 거친 말도 수용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왜냐하면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현장에선 긴장을 놓는 순간 의료사고가 발생할 수 있고 이로 인해 환자 누구인가는 목숨을 잃게 된다는 것을 경계시키기 위한 엄격한 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련과정을 겪은 의사들에게 권위를 존중하는 위계질서는 곧 환자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 된다. 엄격한 수련분위기가 몸에 익은 의사들은 직원과 환자를 대하는 평소 분위기에도 긴장감이 감돈다. 직원의 실수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환자에게도 권위적인 의사로 남기를 바란다. 의사의 수련 분위기가 엄격했더라도 서비스 업종에 들어선 이상, 습관화 된 태도를 벗어버릴 필요가 있다. 직원들을 가볍게 대하면서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병원에 환자가 없는 것을 직원들 탓으로 돌리는 의사들을 적지 않게 목격했다. 정작 자신이 직원을 대하는 태도는 모른 채 말이다. 내부고객인 직원의 감정은 곧 의사가 환자를 대하는 태도와 같다. 직원이 만족하고 기뻐야 환자에게도 즐거운 마음이 전달 된다는 사실은 꼭 기억해 두자.

오늘 당장 직원들과 오순도순 티타임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직원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간 환자는 없는지, 행여나 의사인 자신으로 인해 직원이 불편했던 점은 없었는지 솔직히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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