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로…대포로… 종들의 수난과 부활

이재태의 종 이야기(33)

전쟁과 평화

오랜 지인으로부터 큰 금속 종을 선물 받았다. 과거에 종을 수집할 때 구한 것인데, 본인은 더 이상 종 수집을 하지 않으니 내게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제법 무거운 종을 직접 들고 오셨다. 소화 14년(1939년) 1월 신원리 동종(新院里 洞鐘)이라는 한자가 새겨져있으나, 쇠로 만든 ‘철종(鐵鐘)’으로 생각된다. 우리 옛 종의 특징인 용통(甬筒)이 없으며 종을 거는 고리 역할을 하는 용유를 단순하게 고리형태로만 만들어진 중국종의 형태이다. 바깥에서 막대로 쳐보니, 저질의 금속을 두드릴 때 나는 탁음이 발생하였다. 청아한 범종의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명문에 새겨진 ‘신원리’를 검색해보았다. 경기도 양평, 전북 완주, 전남 광양, 경북 영천과 청도, 경주 등 전국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신원리’가 존재하고 있었다. 경상도와 인접한 어느 ‘신원리’의 동사무소에 걸렸던 종일 수 있겠다고 생각된다.

1937년 일제가 중국을 침략하며 태평양전쟁을 도발하였으나 연합군의 강력한 반격으로 패전의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일본 군부정권은 일본과 한반도 조선에 전쟁 물자를 공급하기 위한 이른바 ‘총후의 정신협력’ 이라며 강제적인 금속류 공출령을 선포했다. 처음에는 친일단체나 친일 불교계를 앞세운 국민운동으로 시작하였으나, 시간이 갈수록 경찰력을 앞세워 강제성을 띄기 시작하였다. 전쟁 정점에서는 수백 개의 일본 불교사원의 범종들이 선박의 프로펠러나 전쟁 물품을 만들기 위하여 용광로로 보내졌다. 한반도에서도 민간의 놋그릇과 사찰의 불교 용품 등의 금속품이 수탈되었고, 비교적 크기가 큰 범종은 가장 수난을 많이 받은 품목이었다. 1943년에 발간된 김제의 금산사지(金山寺誌)에는 ’계미년에 시국에 응하여 범종, 금고와 중간 크기의 종 4개와 기타 불교 용구등 수백 점을 국방자재로 공출하였다‘는 기록이 되어 있을 정도였다.

이 당시에 만들어진 작은 범종들은 구리가 부족한 관계로 무쇠와 같은 재질의 투박한 쇠종들이 많았고, 중국이나 일본의 범종 방식으로 대충 만들어졌다고 한다. 종에 새겨진 글씨들의 조잡한 필체와 잘 못 쓴 철자들도 그대로 남겨져있다. 당시 종을 주조하는 장인들의 수준을 짐작케 하는 명문의 조잡한 필체도 그대로 남겨져 있다. 선물 받은 ‘신원리 동종’도 일제 강점기 때 우리의 아픈 과거를 그대로 담고 있는 근대유물이다. 일본 연호가 새겨진 옛 무쇠종은 과거에 만들어진 금속 쓰레기 정도로 치부되어 돌아다니다가 필자에게로 전해진 것이다.

우리나라 사찰의 종들은 공출을 피하기 위하여 깊은 산속으로 숨겨졌지만 다른 많은 종들이 공출되었다. 지금은 보물 2호로 지정이 된 종로의 보신각 동종은 민족감정을 우려한 일제의 결정으로 병기창에 옮겨지기 직전에 공출이 중지되었다. 계룡산 갑사의 종은 공출되었으나 녹여지지 않은 상태에서 해방을 맞아 다시 갑사로 돌아왔다고 한다.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다. 강화도 전등사의 동종과 불기들은 강제로 공출당한 뒤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였다. 해방이 되자 전등사 주지는 일제에게 빼앗겼던 범종이 혹시 인천 항구에 버려져 있지는 않을까 해서 찾아 나섰다. 그러다 부평에 있는 일제의 조병창 자리 뒷마당에 큰 동종이 하나 버려져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가 찾으러 간 종은 전등사의 동종이 아니었고, 크기가 더 큰 1.63m의 중국산 철종이었다. 종에 새겨진 명문으로 북송시대인 1037년 중국 백암산 숭명사에서 주조한 종임을 알 수 있었다. 광복 후 군정시절에 인천 박물관장은 미군과 교섭하여 중국 철제범종 3개를 비롯해 청동 유물을 이관했었는데 전등사 종을 대신하여 이 종을 전등사에 우선 걸어두었다. 일천 년 전에 주조된 중국종이 여기까지 흘러온 이유는 일제 말기에 일본이 점령한 중국지역에서 공출되어 배를 타고 이곳으로 왔으나, 전쟁이 끝나며 용해되지 않고 살아남은 것으로 추측된다. 이 기구한 운명의 종은 현재 우리나라의 보물 제393호로 지정되어 있다.

종소리에는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의 영혼과 생활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1939년 영국 정부가 독일과의 전쟁을 선언한 이후, ‘1940년 6월부터는 공중 공습경보를 제외하고 모든 교회와 성당의 종을 울리는 것을 금지 한다’는 포고령을 내렸다. 이후 전쟁이 끝날 때 까지 영국에서는 교회당의 종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중세 이후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손상을 입는 것 중의 하나가 교회당의 종이었다. 전승국은 패전한 나라의 민족혼을 압살하기 위하여 종탑을 부수고 큰 종을 그들의 나라로 가지고 갔다. 반면 전쟁에서 승리하면 노획한 적군의 무기와 대포를 녹여 종을 만들어 승리를 축하하였다. 18세기 영국은 미얀마전쟁에서 승리한 후 양곤의 가장 유명한 불교사원의 종탑에 설치된 큰 종들을 전리품으로 가져왔다. 지금 이 종은 북 웨일즈 카나폰 시내와 군사박물관에 보관되어있다.

제 1차 세계대전 중 오스트리아에서는 성당과 교회당의 종들이 무작위로 몰수되었고, 독일에서도 청동종들을 떼어내어 전쟁 물자인 총탄이나 대포를 제작하기 위하여 녹였다. 그들의 종을 보존 가치에 기준을 두고 공출되는 종들을 구분하여 적용하였고, 18세기 이전의 종이나 보존 가치가 높은 종은 종탑에 남겨두었다. 그러나 무려 10만개 이상의 종이 종탑에서 내려졌다. 그 중 9만개는 ‘종 공동묘지’라고 불리어지던 함부르크 항으로 운반되었고, 7만5천개의 종이 총알을 만들기 위해 용해되었다. 이들 중에는 아름답고 오래된 종들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에서도 종은 많은 피해를 보았다. 독일이 점령한 네덜란드, 벨기에를 비롯한 유럽 각국의 종들이 주로 공출되었다. 하지만 폴란드에서는 러시아가 이미 많은 종과 금속들을 가져갔으므로 독일이 점령한 후에 가져갈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러시아에서도 많은 종들이 무기를 만들기 위하여 공출되었다. 그들은 독일과의 전쟁에서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300개 이상의 큰 종들을 종탑에서 제거한 후 모스코바의 안전한 장소로 이동하여 보관하기도 하였다. 이태리에서도 2차 대전 직전에 무솔리니 정부와 바티칸 교황청 간의 종의 이동에 관한 협약이 맺어졌고, 전쟁 물자를 생산하기 위하여 많은 종들이 종탑에서 내려졌다. 그러나 공출을 면하였던 많은 수의 교회 종탑들은 폭격과 화재로 파괴되어 사라졌다. 독일에는 그 당시 파괴된 종들을 그대로 전시하고 있는 곳도 있다.

전쟁이 끝나자, 전쟁 전몰자를 추도하기 위하여 종이 다시 만들어졌다. 이태리 로베레토의 평화의 종은 1차 세계 대전 중 희생된 이태리 병사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1924년 1차 대전에 참전한 19개국의 대포와 포탄을 모아 주조하였고, 슬픔에 잠긴 성모 마리아를 의미하는 ‘Maria Dolens’ 종이라 세례 되었다. 이 종에는 두 명의 교황 이름과 함께 전쟁 발발을 의미하는 새벽과 전쟁이 끝난 황혼이 평화로운 모습이 부조되어있다. 종은 매일 저녁에 전쟁 희생자와 전쟁 참가자들을 기억하기 위하여 수 백 번의 종소리를 내고 있다.

전쟁을 일으켰으나 원자폭탄을 맞으며 패전한 일본은 그들이 전쟁광이 아니라는 점을 알리려는 듯이, 전후에 많은 종각을 건설하고 평화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일본 유엔협회는 1954년 유엔본부에 전 세계 60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수집한 동전들을 녹여서 만든 ‘일본 평화의 종’을 기증하였다. 일본어로 ‘영원하라, 절대적인 세계 평화여!“라는 글이 새겨져 있고, 새해 첫날과 UN총회가 열리는 평화의 날인 9월 21일에 타종 된다. 1994년 UN 사무총장 부트로스 갈리는 “이 종소리가 울릴 때 마다, 인류에게 아주 명확한 메시지가 전해진다. 평화는 고귀한 것이다. 그냥 갈망하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랜 동안에 어렵고 힘든 노력의 결과로 오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일본의 원폭 투하지점에는 평화를 기원하는 종이 설치되었다. 히로시마 평화공원의 종은 1964년에 설치되었다. 여기에는 국경을 구별하지 않은 세계 지도가 조각되어 있고, ‘전쟁과 핵무기가 사라지기를 기원한다. 종소리가 세계 곳곳의 사람들의 귀 속으로 들어가서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하기 바란다.’라는 글이 헌정되어있다. 나가사키 평화의 공원은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 위치에 있던 가톨릭 성당은 대부분 파괴되었으나, 종탑은 무사하였다. 교회의 종은 지금도 보존되고 있고, 1977년 새로운 평화의 종이 설치되었다. 여기에는 기둥에 허리를 걸치고 양손을 뻗어 평화를 기원하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 조각되었고, “창공의 아기들 Babes in the Air”란 이름으로 불려진다. 특별히 일본 군국주의에 강제로 징발되어 전쟁에 동원되었다가 희생된 학생들과 노동자들에게 헌정되었다.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유린한 일본이 피해자인양 평화의 종을 설치하고, 세계에 종탑을 기증하는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진정한 평화는 종탑의 건설하는 것 보다는 평화로운 종소리가 끊기지 않고, 온 누리에 울려 퍼지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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