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다 설명했는데 환자는 ‘모르쇠’라면?

 

한미영의 ‘의사와 환자 사이’

극장에서 티켓팅을 할 때 안내원이 상영시간과 지정좌석에 대해 빨간 색연필로 꼼꼼하게 표시해 주는 것을 볼 수 있다. 일종의 첨삭지도와 같은 안내는 혼잡한 영화관에서 헤매지 않고 자리를 잘 찾게 도와주는 서비스이다.

누구나 표를 보면 알 수 있는 내용을 왜 굳이 설명해 주지? 하고 의아해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객이 돈을 지불할 때 다시 한 번 자신의 구매상황을 확인할 수 있으며, 구매 요청 내용과 다를 경우 빠르게 정정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객만족 서비스 접점이 된다. 불만을 애초에 차단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간단한 절차지만 철저히 고객입장에서 행해지는 서비스인 셈이다.

이러한 첨삭서비스는 의료서비스에서도 벤치마킹 돼 활용하고 있다. 특히 대형병원은 검사와 수납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에 환자가 움직여야 할 동선이 길어진다. 이에 절차를 번호 순서로 지정해 알려 주면 환자가 방황하지 않고 순서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 번호를 이용한 첨삭서비스가 병원 안내의 충실한 가이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의료서비스에서는 환자의 치료행동을 안전하게 이끌어낼 수 있는 서비스 도구가 필요하다. 환자는 의료진과의 대화에서 압축적인 의료정보에 노출되어 혼란스러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환자에게 전달되는 내용에는 질환의 원인, 회복과정, 회복이나 관리방법, 생활교정, 주시해야 할 징후, 약의 복용방법, 주의사항, 부작용, 예방법 등 다양한 의학정보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정보를 수용하는 환자의 기억력에는 분명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인간은 자기 편의적 기억을 한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심리학에서는 이와 같은 현상을 ‘선택적 기억’으로 부른다. 의료진이 치료방법과 질환관리방법을 짧은 시간 동안 열심히 설명한다 할지라도, 환자에게는 진료실 밖을 나가는 순간 전달받은 정보 중 기억하고 싶은 특정정보만이 머릿속에 남게 된다.

따라서 안전한 진료를 위해서는 의사의 진료능력도 중요하지만 환자의 의료정보 처리능력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약 진단명에 따라 예견되는 부작용을 환자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환자가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최근 월경통을 호소한 20대 여성환자가 피임약을 장기간 복용해 폐혈전색전증으로 사망한 사건을 두고 법원이 의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이 나왔다. 20대 중반의 나이에서는 색전증이라는 부작용의 위험이 크지 않다는 점과 약사가 부작용을 설명한 점은 의사에 대한 무죄판결의 근거가 됐다.

위 사건은 부작용과 관련해 의료진의 설명과 주의 의무를 다시 한 번 상기하게 하는 판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의사가 처방한 약에 대한 부작용을 환자에 일일이 설명해 주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진료시간 내 모든 주의사항을 일러주고 환자가 이해했는지 여부를 확인 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의료진과 환자 모두에게 만족스런 방법 중에는 안내문을 통해 강조하는 방법이 있다. 각종 사항을 재차 설명하고 주의를 주는 것보다 종이 한 장으로 의사의 설명 의무를 대변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우선 비교적 많은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질환의 경우에는 기본적인 정보를 출력해 놓고 반복 설명해야 하는 사항들을 점검해 준다. 환자 입장에서는 전달받은 내용을 재차 확인할 수 있고, 부가적인 설명을 통해 환자 스스로 무엇을 주의 해야 하고 관리해야 하는지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병원이 환자를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고객으로 본다면 고객편의적 프로세서가 무엇인지는 더욱 명확해 진다. 실제로 오래 전부터 설명안내문에 대한 첨삭지도 방법을 많은 병원들이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환자가 진료내용에 대해 기억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 것을 환자의 무지 탓으로 돌리는 분위기도 여전하다.

아직 저수가로 묶여져 있는 국내의료제도 때문에 짧은 진료시간을 늘리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진료시간을 늘리지 못한다면 짧은 진료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보는 지혜는 어떨까? 환자에게 필요한 최적의 환경을 모색하는 하는 것은 의료서비스 공급자의 경쟁우위를 만드는 지략이 될 것이다.

    코메디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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