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케어 제품, 누가 돈을 내는가?

 

김치원의 ‘지금은 디지털헬스 시대’

모든 사업이 그렇듯이 디지털 헬스케어 역시 누구로 하여금 돈을 지불하도록 할 것인지, 즉 비즈니스 모델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헬스케어는 소비자가 직접 구입하기도 하지만 보험의 적용을 통한 제 3자 지불 방식이나 의료기관의 직접 구매 등 다양한 구입 방식이 존재합니다. 비즈니스에서는 돈을 내는 사람이 제품 선택권을 갖게 됩니다. 이 때문에 비즈니스 모델을 결정하는 것은 단순히 누가 돈을 누가 내느냐 하는데 그치지 않고 대상 시장, 제품에 대한 신뢰 등 시장에서 중요한 요인들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1. 소비자가 직접 구입하는 경우

현재까지 많은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들은 소비자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B2C (Business to Consumer)라고 합니다. 손쉬운 방법처럼 보이지만 작은 규모의 벤처 회사 입장에서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마케팅하고 판매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한 소비자들은 의료 장비에 대한 지불 의향이 약하므로 판매할 수 있는 제품의 종류에도 제한이 생깁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의료 장비는 환자가 품질 혹은 효용을 정확하게 알기 힘든 신용재(Credence good)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병원에서 의사의 처방을 받아서 사용하는 것보다 전자제품 전문점에서 구매해 집에서 이용하는 경우 장비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의료기기라기 보다는 신기한 장비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전략적으로 의료기기가 아닌 일련의 장비로 타겟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런 장비 비슷한 포지셔닝으로 틈새 시장을 넘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B2C를 택하는 경우 아이팟이나 태블릿 PC를 구입하는 것처럼 제조사 홈페이지나 전자 전문 매장이나 쇼핑 사이트에서 구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휴대용 심전도인 얼라이브코(AliveCor)는 기본적으로 소비자가 구입하는 B2C 방식이면서 한발 더 나아간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얼라이브코로 측정한 심전도 검사 결과를 의사가 판독하는 경우에 대해서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보험 적용을 받는 의료기기는 병원이 구입해서 사용하고 사용할 때마다 보험회사로부터 일정 금액을 수가로 받는 것이 일반적인데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낸 셈입니다.

아마 심방세동 수술을 받은 환자 등 특정 환자군이 얼라이브코를 구입할 때 기기 가격에 대해서 보험적용을 받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여의치 않아서 이런 방식을 택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되면 의사 입장에서 얼라이브코가 좋은 제품이라는 전제 하에 환자에게 구입해서 사용을 권할 인센티브가 생깁니다.

또한, 환자 입장에서는 얼라이브코로 측정한 결과를 의사가 판독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이 제품이 믿고 쓸만하다는 신뢰를 갖게 됩니다. B2C 모델에 보험 적용이라는 B2B 모델을 부분적으로 더함으로써 브랜드 가치 향상과 판촉 확대라는 두 가지 효과를 얻은 셈입니다.

2. 보험 적용을 받는 경우

장비 가격이 비싸거나 질환이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 건강 보험의 적용을 받고 나서 의사의 처방에 따라서 사용하는 방식을 택하고자 합니다. 보험에서 지불하는 방식입니다. 돈은 보험사가 내고 장비는 병원에서 구입해서 환자를 대상으로 사용하는 (B2B2C) 경우가 흔하고 보험 적용을 받아서 소비자가 구입해서 사용하는 (B2C) 경우도 있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들은 저렴하고 사용하기 간편하며 심지어 집에서 환자가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업체들은 건강 보험 적용을 쉽게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보험적용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한 가지 이유는 보험 회사의 경로 의존성 때문입니다. 기존의 보험 카테고리를 벗어나는 제품의 경우 따로 보험 청구 코드를 부여해야 합니다. 그런데 보험회사들은 보수적이며 새로운 것을 반영하기 보다는 기존 시스템의 틀 안에서 운영하기를 원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보험 지불 제도의 특징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의료보험 지불 제도는 행위별 수가제를 근간으로 합니다. 병원에서 시술이나 검사 한가지를 할 때마다 보험회사에서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한다는 뜻입니다. 보험회사가 모든 경우에 대해서 수가를 지불하지는 않습니다. 대상 질환, 실시하는 방법 등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에 맞추어서 시행한 경우에 한해서 지불합니다.

보험회사들은 병원에서 검사를 제대로 시행하지 않고 수가를 요구하는 허위 청구가 발생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MRI에 대한 수가를 받기 위해서는 미리 정해져 있는 기준에 맞는 환자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 것은 물론, 의사가 결과를 확인하고 그 결과에 대한 판독을 남겨야 합니다. 이렇다 보니 역설적이게도 쉽고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장비가 보험회사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 장비로 제대로 검사했는지를 점검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2009년 GE는 V scan이라는 휴대용 심장 초음파 장비를 출시했습니다. 기존 심장 초음파보다 화질이 좀 떨어지기는 하지만 의사 가운 주머니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휴대가 간편해서 심장 질환이 의심되는 환자에게 손쉽게 이용할 수 있고 가격도 $8,000 정도로 싸서 디지털 헬스케어의 선두주자로 각광받았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이유들 때문에 보험회사의 외면을 받아서 결국 크게 보급되지는 못했습니다.

3. 의료 공급자가 구입하는 경우

병원에서 사용하는 모든 의료기기가 보험의 적용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보험과 무관하게 병원이 직접 구매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B2B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술용 로봇 등 비급여 의료기기는 보험 적용이 없어도 병원이 구입해서 사용하지만 아직 초창기인 디지털 헬스케어에는 해당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에서 더 중요한 것은 병원이 따로 금전적 보상을 받지 못하면서 업무 효율 혹은 환자 안전을 향상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병원들이 전자의무기록(Electronic Medical Record: EMR)을 도입한 것이 그렇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의 병원들은 별다른 보상 없이 전자의무기록을 빠르게 받아들였지만 미국에서는 2008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기업들의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서 제정된 ARRA (American Recovery and Reinvestment Act)에서 인센티브와 벌칙을 도입한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해서 나라마다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병원도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추가 수익을 낼 수 없는 곳에 무작정 투자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똑같이 보험적용을 받지 못해도 로봇 수술은 추가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앞다투어 도입하지만 비용만 들 뿐 추가 수익을 낼 수 없는 것을 도입하는 것은 망설일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좋은 용도의 제품이라 해도 매출을 창출할 수 없는 제품이라면 의료 공급자에게 판매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최근 미국에서 Accountable Care Organization(ACO)이라는 시스템 도입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 합니다. 이 시스템에 소속된 의료기관들은 환자가 건강을 유지해서 입원할 일을 줄이고 퇴원한 후에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해서 의료비를 절감하면 그 이득을 나누어가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ACO에 소속된 의료기관들은 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해도 환자의 건강 향상에 도움이 된다면 V scan 초음파나 구글 글래스를 직접 구입해서 사용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불 주체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자면 헬스케어에서는 혜택을 보는 주체(환자 또는 의료기관)와 돈을 지불하는 주체(보험사)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할 때 이 부분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국민건강보험이라는 단일 보험자만 존재하는 반면 미국에는 다양한 보험자가 존재하고 제도 또한 매우 복잡합니다. 따라서, 향후 세계 최대의 의료 시장인 미국으로의 진출을 고려한다면 제품 출시 전부터 보험을 비롯한 의료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적절한 비지니스 모델을 갖추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코메디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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