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회원제 고급 진료’ 급속 확산

 

김치원의 ‘지금은 디지털헬스 시대’

미국에는 컨시어지 메디슨 (Concierge Medicine)이라는 진료 형태가 있습니다. 당연지정제가 적용되는 우리나라에서는 낯선 이야기이지만, 이 컨시어지 메디슨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위키피디아의 정의에 따르면 컨시어지 메디슨은 의사가 적은 수의 환자를 보면서 환자마다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는 대신 의료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고 의사에게 연회비 ± 진료를 받을 때마다 지불하는 진료비를 지급하는 진료 형태를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에서 3분 진료가 이슈가 되고 있지만 미국에서도 환자 한 명 당 외래 진료 시간이 짧아지고 있습니다. 의료보험 회사들이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진료비를 줄이자, 이에 따른 수익이 감소한 의사들이 외래 환자 예약을 더 많이 받고, 보험 관련 서류 처리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되면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65세 이상을 위한 국가 의료보험인 메디케어(Medicare)의 지출액이 증가함에 따라 메디케어 진료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이 같은 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감기나 감염병 등으로 급하게 진료를 봐야 할 때는 담당 의사에 내원 하는 것이 아닌 응급치료클리닉(Urgent care clinic)을 이용하거나, 리테일클리닉(Retail clinic)에서 의사가 아닌 PA (Physician Assistant)의 진료를 받아야 합니다. 결국 환자, 의사 모두 이에 불만을 표하기 시작하자 이 시스템을 벗어나기 위한 시도 중의 하나로 컨시어지 메디슨을 강화 실시하게 된 것입니다. 최근 2,3년간 컨시어지메디슨이 미국에서 크게 늘어나고 있어 여러 매체에서 이에 대해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해당 기사들을 바탕으로 몇 가지 정리하자면 2012년 기준으로 미국에서 4,400명 정도 의사들이 컨시어지 메디슨 진료를 했습니다. 이들이 보는 환자의 수는 적습니다. 일반적인 1차 진료 기관들이 2,500명의 환자를 보지만 컨시어지 메디슨 진료의 경우 300~600명 정도의 환자를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적은 수의 환자를 보는 대신에 환자마다 더 많은 관심과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컨시어지 메디슨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물론 환자들은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게 됩니다. 지불 방식과 액수는 형태에 따라서 다릅니다.

최고급 컨시어지 메디슨의 경우 고급 호텔 내에 위치한 외래에서 진료하면서 월회비 $30,000이고 진료 볼 때마다 $550을 내야 합니다. 좀 더 일반적인 경우에는 연회비 $1,500~1,800 정도로 별도의 진료비를 내기도 합니다. 매우 저렴한 곳은 연회비를 $200~600 정도만 냅니다.

이 연회비는 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며 진료비는 보험 적용을 하는 경우가 있고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즉, 진료비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처럼 진료받는 단계에서 보험 적용을 해주기도 하고 우리나라 민간의료보험처럼 진료 후에 환자가 알아서 본인이 가입한 보험에 해당되는지를 알아보고 보험료 환급을 받는 식으로 운영되기도 합니다.

보험 적용을 하지 않는 경우 의사들이 보험에 구애 받지 않고 진료할 수 있어 진료 외에 쏟는 시간을 줄이고 그렇게 절약한 시간을 환자 진료에 성심껏 할애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험 적용을 받지 않고 연회비를 받는 대신에 컨시어지 메디슨 진료를 하는 의사들은 일반적인 10~15분보다 긴 시간 동안 진료를 하며 당일 진료 예약을 제공합니다. 전화 혹은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진료 상담을 해주기도 하고 왕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클리닉과 연회비에 따라서는 매년 한차례 건강 검진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또한 많은 경우 검사비를 거의 원가 수준으로 싸게 해줍니다.

미국에서 컨시어지 메디슨은 최근 들어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오바마케어라고도 불리는 어포더블 케어 액트(Affordable Care Act)가 제정된 것과도 무관치 않습니다. 오바마케어의 도입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의료보험 적용을 받게 되었지만, 1차 진료 의사들이 너무 바빠져서 환자나 의사 모두 더 여유 있는 진료 형태를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컨시어지 메디슨 클리닉들은 연회비 이외에 추가 비용을 받지 않거나 기본적인 검사들은 무료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고 추가 비용을 받는다고 해도 거의 원가 수준의 매우 저렴한 비용을 받습니다. 또한 보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아직 수가 책정이 되지 않은 원격진료나 왕진 등을 통해서 보다 편리한 진료를 받을 수가 있다는 점도 장점입니다. 의사 입장에서는 연회비로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보험 청구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또, 보험 청구를 비롯한 서류 정리에 들어가는 시간을 아낄 수 있어 근무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의사는 컨시어지 메디슨을 통해서 큰 이익을 얻는 것 같지만 이에 따르는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큰 위험은 메디케어 환자들이 경제적 부담 때문에 컨시어지 메디슨 클리닉을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즉, 컨시어지 메디슨을 택하는 의사는 상당수의 환자군을 포기하는 셈입니다. 게다가 이를 포기하는 의사는 2년간 메디케어 적용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컨시어지 메디슨으로 전환했다가 잘 안 되는 경우 회복하기가 힘듭니다. 또한, 의료보험사들이 구축한 환자 의뢰 네트워크에서 배제되면서 의사와 클리닉이 환자 유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이 있습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이와 관련한 현상을 분석하면서 향후 10여년에 걸쳐서 1차 진료는 두 개의 트랙으로 나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일부의 환자들은 의욕이 넘치는 의사로부터 고품질의 진료를 받게 되지만, 다른 환자들은 과로에 시달리는 의사가 최대한 서두르면서 제공하는 ‘조립공장식 진료’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의료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컨시어지 메디슨과 같은 모델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우리나라 국민은 모두 국민건강보험에 가입되며 의료기관은 건강보험 가입자를 건강보험에서 정한 방식으로만 진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나라 국민은 선택권 없이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과로에 시달리는 의사가 최대한 서두르면서 제공하는 ‘조립공장식 진료’를 받고 있는 셈입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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