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하루 10잔 이상? 물도 지나치면 독”

 

이동진의 ‘나는 환자였던 의사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수분 과잉으로 건강을 잃는 이들이 더 늘고 있다. 체내에 넘쳐나는 수분이 몸을 더 차게 만들어 신진대사를 방해하고 온갖 이상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박희선(가명) 씨도 그런 환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녀는 몇 달간 기침을 계속 해서 여러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다.

쉴 새 없이 기침을 계속하는 그녀와 상담하면서, 물을 지나치게 많이 먹는다는 것을 알았다. 물을 자주 많이 마시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고정관념을 가진 그녀는 하루에 10잔 이상의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녀처럼 요즘 의식적으로 물을 자주 먹는 이들이 많다. 물을 많이 먹는 것이 건강의 으뜸이라고 알려지면서, 물 마시기 캠페인이라도 벌어진 것 같다.

‘물’ 만능주의는 잘못된 상식이다

물은 생명 유지의 필수 물질인 만큼 우리의 건강에 중요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현대인의 몸에 유해물질이 많아지면서 그것을 해독하기 위해 수분섭취가 더 필요한 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적당히 먹어야지 물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

문제는 물을 자주 먹는 것이 해로운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냉성 체질인 사람이 무턱대고 물을 많이 마실 경우 오히려 병을 부추긴다. 박희선 씨 역시 심장과 간장에 정기(精氣)가 약한 냉성 체질로 물을 자주 먹으면 독이 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감기에 걸려 폐렴으로 발전한 후 병원에서 물을 많이 마시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 전부터 물을 많이 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말을 계속 들었던 터라 그때부터 물을 자주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침은 낫지 않았고 급기야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 만큼 심한 기침으로 발전했다. 기침 때문에 사람들도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박희선 씨에게 체질적 특징을 설명하고 기침이 심하므로 우선 며칠간이라도 하루 물 섭취량을 2~3잔으로 줄이라고 권했다. 그녀는 생활처방대로 실천했다. 그러자 3~4개월간 쉼 없이 계속되던 기침이 3일 만에 완전히 사라졌다. 몸에 좋은 줄 알고 실천한 건강법으로 오히려 건강을 잃었던 그녀는 뒤늦게 그릇된 편견을 깨고 비로소 건강을 되찾은 셈이다.

그녀처럼 ‘물 만능주의’라는 잘못된 상식을 건강의 진리처럼 따르다가 부작용을 겪는 이들은 의외로 많다. 자신의 체질을 고려하지 않고 무턱대고 물을 자주 마시다가 지병이 악화되거나, 무기력해지거나, 소화력이 떨어지거나,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호흡이 불편하거나, 소변이 자주 마렵거나, 손발이 너무 차거나, 두통이 생기거나, 눈 주위나 몸 전체가 많이 붓거나, 병원 검사 상 이상이 없는데 1개월 이상 기침을 계속하는 등 갖가지 이상으로 찾아오는 이들이 계속 늘고 있다.

양방에서는 감기나 기관지 천식에 물을 자주 마시라는 처방을 한다. 초기 감기에는 고열을 내리는 처방으로 도움이 되기도 한다. 고열이나 기침으로 고생할 때 물을 마시면 당장 가라앉는 듯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이것은 초기 감기일 때에 한해서다. 감기가 오래 갈 때 물을 지나치게 먹는 것은 오히려 해가 된다. 냉성 체질에게는 병을 더 키우고 만성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특히 찬 물을 먹는 것이 해롭다. 한의학에서는 신장과 폐가 수기(水氣)를 주관하고, 찬 물을 마시면 폐의 기가 상한다고 본다. 폐는 코와 상통하기 때문에 비염 등의 이상을 부추길 수 있다. 만성 감기에 찬 물을 자주 마시는 것은 병을 더욱 부채질하는 셈이다.

물 과다 섭취, 맞는 사람 & 맞지 않는 사람

<동의보감>에 보면, 우리 몸에 쌓여서 만들어지는 ‘적(積 : 담음(痰飮)이 쌓여 딱딱하게 된 것)’에는 흔히 알고 있는 적체(음식물이 제대로 소화되지 않아 체한 것) 외에도 음적(飮積), 담적(痰積), 다적(茶積) 등 여러 가지가 나온다. 즉 음료나 물을 너무 마셔도 적(積)이 될 수 있고, 차를 빈속에 많이 마셔도 적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적이 있으면 복부를 누를 때 저항감이 있고 딱딱하다. 오래 되면 암이 될 수도 있을 만큼 해로운 것이다. 소화기능이 약한 사람이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 몸에 쌓일 경우 병을 일으키는 것처럼, 물 또한 제대로 대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이 마실 경우 건강을 해치게 된다.

물도 지나치면 분명 몸에 해롭다. 자신이 대사할 수 있는 수분의 양을 초과하면 병을 일으킨다. 평소 추위를 많이 타고, 손발이 차며, 소화가 잘되지 않고, 설사를 자주 하며, 어지럼증이 있고, 물을 마셔서 팽만감이나 냉기가 심해진다면, 물을 많이 먹으면 독이 되는 냉성 체질이다.

반면 물을 자주 마시면 좋은 체질도 있다. 몸에 열이 많은 체질은 물을 자주 마시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 더위를 많이 타고, 찬 음식을 좋아하며, 추위에 강하고, 소화력이 왕성한 사람이라면 열성 체질일 가능성이 높다. 물을 자주 마실 때 열감이 사라지고 컨디션이 올라간다면 물을 자주 먹으면 좋은 체질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물 섭취량도 달라야 한다

평소 유해식품을 많이 섭취하던 열성 체질의 사람이 유해식품을 덜 먹고 물을 자주 먹는다면, 열을 내리고 유해물질을 해독하는 기적적인 치유효과를 볼 것이다. 그런 사람의 사례가 알려지면서 ‘물을 많이 먹는 것이 좋다’는 고정관념이 만들어졌다.

잘못된 고정관념은 하루 빨리 깨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하루에 물을 10잔 이상 마시면 좋은 사람도 있지만, 4~5잔 정도 적게 먹는 것이 좋은 사람도 분명 있다. 일반적인 기준을 그대로 자신에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 또 내 몸에 필요한 수분의 량은 현재의 몸 상태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특정 질환이 발병했거나 냉기에 노출되는 등 현재의 몸 상태에 따라 필요한 적정 수분량은 변화한다. 물을 마시면서 자신의 몸의 반응을 살피면, 가장 맞는 물 섭취량을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다. 나의 체질과 현재의 상태를 외면하고 무턱대고 물 건강법을 따라 하는 것은, 자신의 건강을 걸고 하는 위험한 도박이다.

내 몸에 맞는 물 사용 설명서

* 체질 특성이나 물을 마시면서 몸의 반응을 점검하여, 자신에게 맞는 물 섭취량을 정한다.

* 가급적 미지근한 물을 마신다. 찬물이나 너무 뜨거운 물은 몸의 균형을 깬다.

* 물도 다른 음식물처럼 조금씩 천천히 마신다.

* 식사 중에 물을 많이 마시면 소화활동을 방해하므로 피한다.

* 물은 가급적 식사 1시간 전이나 2시간 후에 수시로 자신에게 맞게 마시는 것이 좋다.

*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물도 많이 먹지 않는 것이 좋다.

* 목이 마르면 가급적 다른 음료수 말고 물을 마시는 것이 좋다.

* 추울 때는 물 섭취량을 줄인다. 몸을 더 냉하게 만들어 체내 균형을 깬다.

* 심부전,신장병, 간경화 등으로 인한 부종 환자, 갑상선기능저하증 환자 등은 물을 많이 마시면 좋지 않다.

글. 이동진 (한의사, ‘채식주의가 병을 부른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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