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살리는 의학,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 수도

 

이동진의 ‘나는 환자였던 의사다’

‘약원병’ 환자였던 의사가 밝힌 진짜 약은?

의사가 되기 전, 나는 환자였다. 그것도 병원에서 제대로 진단조차 나오지 않는 희귀병으로 절망의 세월을 보냈다. 당시 의사들은 내 몸에 나타나는 많은 이상을 이해할 수 없다며 스트레스성이라고 했고, 신경정신과 치료를 권했다. 정신과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을 먹자 정신이 몽롱하고 심신의 무력감이 나날이 더해갔다. ‘이러다 진짜 정신병자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치료를 포기했었다.

설상가상으로 오랜 투병 중에 한약을 먹고 죽음 직전까지 가는 부작용도 경험했다. 결국 약으로 오히려 병을 키운 ‘약원병’ 환자가 되어 더 큰 고통을 겪은 셈이다. ‘사람을 살린다는 의학이 잘못 하면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다’는 것을, 의학 교과서가 아니라 내 병을 통해 절절히 배웠다.

환자 시절의 나처럼, 약으로 병을 키운 ‘약원병(藥原病)’이나 병원 치료로 병을 키운 ‘의원병(醫原病)’ 환자들은 의외로 많다. 더욱 문제는 자신이 의학적 처방으로 병이 더 악화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단지 지병이 심해진 것으로 오해하고, 잘못된 치료를 이어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약원병 환자가 증가하는 것은, 현대의학의 치료가 ‘완치요법’이 아닌 주로 증상을 임시로 완화하는 ‘대증요법(對症療法)’에 주력하면서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약은 부작용의 가능성이 있고, 오래 먹어서 안전한 약은 없다. 그래서 약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파라셀수스는 “모든 약은 독이다. 사용량이 문제일 뿐, 독성이 없는 약은 없다”고 했다.

미국에서 ‘대중의 의사’로 불리는 로버트 S. 멘델존 박사도 저서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를 통해 가장 안전한 약물로 알려진 아스피린조차 부작용이 있는 만큼 “세상에 안전한 약은 없다”고 강조한다. 세계적인 면역학자인 아보 도오루 박사 역시 “약의 장기 복용은 면역력을 저하시켜 새로운 병을 만든다”고 했다. 약을 계속 먹어야 하는 만성질환자가 늘면서 약원병의 증가는 예견된 비극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현대의학은 많은 의학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약물 부작용’을 현대인의 주요 사망 원인으로 만든 폐해를 낳았다. 약물 부작용은 이미 세계적인 사회문제다. 미국의학협회지에 실린 논문 ‘입원 환자에게 나타나는 약물 부작용 발생률’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병원 처방약 부작용으로 인한 사망자가 한해 평균 10만 여명이라고 한다. 미국의학원(IMO) 통계에서도 해마다 미국에서 약물유해반응으로 인한 사망자가 10만 명에 이르며, 이 수치는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보다 높다고 한다.

미국 외에도 선진국의 경우 대체로 의약품 부작용이 주요 사망 원인이 되고 있다. 일본 후생성의 발표에 따르면, 2003년 한 해 동안 약화사고로 인한 공식적인 사망자가 1천2백여 명이며, 비공식적인 약화사고까지 합치면 약물로 인한 피해는 엄청날 것이라고 한다.

약물 부작용이 심각한 것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이달 초,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문정림 의원은 2010년부터 5년 동안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에 보고된 약품부작용을 분석한 결과 총 50만 건의 부작용 사례가 보고되었다고 밝혔다. 다른 나라들보다 항생제 처방률이나 주사제 처방률이 높을 만큼 약을 좋아하는 국민성을 감안할 때 약원병의 심각성은 더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약은 야누스의 두 얼굴처럼 유용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치료 작용이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부작용이 있는 것이 약의 속성이다. 이것은 천연 약재인 한약도 예외가 아니다. <동의보감>에는 ‘단순히 몸을 보하는 약재일지라도 약성이 치우치면 문제를 일으키고, 질병 치료에 쓰는 약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약으로 쓰이는 물질은 모두 그 약성이 독성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양약과 한약, 안전하고 효율적인 이용 지침

약원병을 막고,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환자와 보호자가 치료의 주체가 되어 병세를 세세히 살피고, 병원 치료법과 생활 치유법 전반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길 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 치료를 시작할 때부터 주체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병원 치료를 할 때는 안전성과 효율성을 미리 충분히 검토하자. 자신이 받을 치료법이 어떤 효과와 부작용 가능성이 있는지, 완치가 가능한 것인지, 임시로 증상만 완화시키는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물어서 제대로 알아야 한다. 약을 처방받을 때도 무슨 약인지, 어떤 효과와 부작용이 있는지를 자세히 묻고 이해하자. 병원에서 완치를 기대하기 힘든 경우는, 의학적인 치료보다 발병의 원인인 잘못된 생활습관을 바로 잡는 생활치유를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최선이다.

생명이 위급한 응급상황이 아니라면, 신약이나 첨단수술 등 새롭게 등장한 치료법도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나중에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을 두고 그 치료법의 장단점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턱대고 첨단 치료법이라는 말만 듣고 자신의 생명을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

한방 치료를 할 때도 똑똑한 치유 주체가 되어야 한다. 치료를 시작할 때는 가장 먼저 실력 있는 의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양방과 달리 한방은 의사의 감관(感官)에 의존하는 주관적인 의학이라는 한계를 가진 만큼, 실력과 성실함을 갖춘 의사를 찾아야 한다. 임상 경험이 얼마나 많은지, 주 전공이 무엇인지, 정확한 진단을 위해 환자와의 상담이 성실한지, 치료과정과 생활관리법을 자세히 설명하는지 등을 보고 신중하게 주치의를 정하자.

한약을 이용할 때는 같은 약을 한꺼번에 많이 짓지 않는 것이 좋다. 우리 몸의 기(氣)와 병세는 계속 변하기 때문에 각 단계마다 맞는 처방을 하는 것이 한의학의 기본 원칙이므로, 약은 최소 단위로 지어 단계별로 맞게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약은 효과가 늦게 나타난다는 속설이 있지만, 치료 목적으로 처방된 약은 그렇지 않다. 병세가 호전된다는 것을 전혀 느낄 수 없다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약일 가능성이 크다.

잘못 처방된 약으로 인한 ‘부작용’과 몸이 호전되는 과정에서 잠시 나타나는 ‘명현현상(호전반응)’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명현현상은 치료를 통해 서서히 기혈(氣血) 순환이 원활해져 체내 노폐물이 배출되거나, 막혔던 기혈이 소통을 시도하면서 통증이나 피로 등의 이상 증상이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명현현상이 있어도 치료 초기에 잠시 나타나고, 몸이 편안하거나 혈색이 좋아지는 등 긍정적인 변화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이런 호전 반응 없이 새로운 이상 증상만 계속되거나 병세가 악화된다면 잘못된 치료로 인한 부작용일 가능성이 크다.

‘병은 약으로 고친다’ ‘병은 의사가 고친다’는 고정관념이 약원병을 부추기고 있다. 의사는 단지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이고, 치유의 주체는 언제나 환자 자신이다. 환자와 가족이 의사가 되어 병을 제대로 이해하고, 병세를 주도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또 발병의 원인은 대개 환자의 생활 속에 있으므로 잘못된 생활습관을 바로 잡는 근원적인 치유의 노력을 해야 한다.

한의학에서는 호흡, 식사, 운동, 마음을 건강의 으뜸 요소로 강조한다. 건강을 지키는 이 네 가지 요소 가운데 자신의 생활은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해서 바로 잡아야 한다. 결국 환자의 주체적인 의지와 적극적인 실천이 가장 안전한 완치법이자, 최고의 명약이다.

글. 이동진 (한의사, ‘채식주의가 병을 부른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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