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새록새록….부추달걀찜

● 한주연의 꽃피는 밥상(5)

 

조금만 더, 조금만… 다섯 살배기 꼬맹이에게는 흔들거리는 상자 위에서 까치발을 하고 손을 뻗어도 닭 둥지가 너무 높았다. 20살 사촌오빠가 뻔쩍 안아 올려주니 눈앞에 달걀 3개가 보였다. 어미 몸을 떠난 지 얼마 안 된 걸까? 어미의 온기를 느끼며 입가에 미소를 짓다가, 그만 울음보를 터뜨렸다. 또 엄마가 보고 싶은 것이다.

다섯 살 때 나는 고아 아닌 고아였다. 아버지가 은행원 생활을 접고 온돌 파이프 제조업을 시작하면서, 나는 부모와 두 살 아래 남동생과 떨어져 농사를 짓던 경북 선산군 해평면의 큰집에서 1년가량 살아야 했다.

그곳 논두렁에서 피라미도 잡고 꼬맹이 힘으로는 끄덕도 하지 않는 소몰이도 해보는 등 아스라한 추억도 있지만, 걸핏하면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어서 어른들의 꾸지람을 들었다. 두 마디로 ‘낙동강 오리알’이었고 한마디로 ‘밉상’ 또는 ‘천덕꾸러기’였다.

눈칫밥으로 먹어야 하는 하루 세 끼도 고역이었다. 할머니가 차려준 시골밥상은 늘 밥과 국, 된장찌개, 나물반찬, 계절김치였다. 다섯 살 꼬맹이를 위한 반찬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반찬 투정을 할 수도 없었다.

당시 가장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은 달걀찜이었다. 부엌에서 아궁이에 앉아 불쏘시개로 불장난을 할 때 큰어머니가 뒷마당으로 가면 꼬맹이의 입가가 벌어졌다. 달걀찜에 넣기 위해 텃밭의 부추를 베러 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큰어머니는 부추 몇 가닥을 베어와 송송 썰었다. 흰 사발에 노란 달걀을 풀고는 부추를 넣고 밥이 뜸 들 때가 되면 사발 째 가마솥 안에 넣었다. 침이 꼴딱 넘어갔다. 닭이 달걀을 1개밖에 낳지 않아 달걀찜의 양이 적으면 내가 먹을 것도 별로 없었지만, 사발을 긁으며 달걀찜을 먹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었다.

1년의 시골생활을 끝내고 어머니 품으로 돌아와서 처음 해달라고 졸랐던 음식도 부추달걀찜이었다. 그 뒤에도 3년 동안 방학 때만 되면 나는 혼자 선산 큰집으로 가야 했다. 그때에도 단백질은 주로 달걀찜으로 보충해야만 했는데,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는 게 지금도 신기하다.

나는 비위가 유난히도 약해 고기누린내, 생선비린내나 채소의 강한 향을 싫어한다. 달걀찜도 그냥 찐 것은 식으면 비릿한 냄새가 나 싫다. 그러나 부추달걀찜은 예외다. 부추의 향긋한 냄새가 달걀의 비릿함을 다 씻어내고 폭식폭신한 식감까지 선사하기 때문이다.

부추는 달래과에 속하는 채소다. 내 고향 경상도에서는 정구지로 부르지만 호남에서는 솔, 충남에서는 졸이라고 부른다. 불교에서는 달래, 파, 마늘, 생강과 함께 ‘오신채’라고 해서 금하는 식품이다. 스님의 수행에 방해가 될 정도로, 남성의 힘을 불끈불끈 솓게 만들기 때문이다. 봄 부추는 인삼보다 더 좋다고 한다. 경상도 사투리로 첫물의 부추를 아시 정구지라고 하는데 ‘아시 정구지는 사위도 안 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부추는 절에서 아무리 금해도 스님들이 몰래 먹을 만큼 맛있다. 데쳐서 나물로 먹어도, 전으로 부쳐 먹어도 맛있다. 재첩국에 넣어 먹어도, 김치로 담아 먹어도 맛있다. 나는 달걀찜에 넣어 먹는 것이 가장 좋지만.

달걀은 뇌의 ‘행복물질’ 세로토닌을 만드는 데 필수성분인 트립토판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추에 풍부한 비타민B6와 마그네슘도 세로토닌의 합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달걀과 부추는 세로토닌 합성에서 최고의 짝인 셈이다. 그래서 울보 꼬맹이가 부추달걀찜 앞에서 울음을 똑 그쳤을까?

지금도 세상의 벽 앞에서 내 자신이 작게 느껴질 때에는 부추달걀찜을 해먹곤 한다. 다섯 살 때 처음 맛봤던 고소하고 말캉거렸던 맛을 요리한다. 부추 송송 썰어 넣은 달걀찜 한 숟가락을 입에 넣으면 꼬맹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입 안에서 달걀의 부드러움과 부추의 짙은 초록이 어울려 번지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부추달걀찜

 

재료(2인분)

– 달걀 3개, 부추 50g, 소금1t, 물 300ml

– 부추무침 양념 : 진간장 1t, 참기름 1t

만들기

1. 부추는 깨끗이 씻어 3컵 정도의 물이 끓으면 소금을 약간 넣고 살짝 데친다.

2. 부추를 찬물에 헹궈 물기를 꼭 짜고 1cm 길이로 송송 썰어 양념장으로 무친다.

3. 달걀은 젓가락으로 풀어 물을 부어 섞은 뒤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달걀물의 알끈을 고운 채에 거른다. (달걀 1개에 물 100ml)

4. 그릇에 부추를 넣고 달걀물을 붓거나, 달걀물만 부어 쪄낸 후 나중에 부추무침을 고명으로 올리는 두가지중 하나를 선택한다. 그릇 두 개에 두 가지 방법을 다 해 보아도 좋다.

생 부추를 송송 썰어 달걀물에 넣고 쪄도 맛있다.

5. 냄비의 물이 끓으면 찜기 안에 젖은 면보를 깔고 달걀그릇을 넣어 약한 불로 5분정도 찐다.

6. 그릇이 뜨거우니 조심해서 낸다. 여름엔 유리그릇에 쪄서 차갑게 식힌 후 냉계란찜으로 먹어도 시원하고 맛있다.

Tip.

* 부추 구입요령

– 잎이 싱싱한 담록색으로 엽폭이 넓고 곧게 뻗은 것이 좋은 부추다. 어리고 연한 것이 맛있고 너무 자란 것은 억세고 질기다. 잎 끝이 진한 녹색으로 뒤틀려 있는 것은 오래된 것이다. 봄에는 비닐하우스 부추 보다는 노지의 부추가 향이 좋다.

– 구입 후 씻지 말고 키친타월에 싸서 비닐팩에 넣은 후 냉장보관하면 2주일 이상 생생하다.

* 달걀 구입요령

– 껍질 상태로 봐서는 잘 모르고 깨봐서 노른자가 봉긋하고 흰자가 탱글탱글하게 탄력 있는 것이 좋은 계란이다. 냉장유통의 계란을 구입하고 생산날짜가 최근인 것을 고른다.

어울리는 술

 

– 단맛과 신맛의 과일향이 강한 차가운 모스카토 다스티의 화이트 와인과 어울린다.

– 복분자나 매실로 만든 산뜻하고 가벼운 스파클링 전통주와 어울린다.

    코메디닷컴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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