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환자에게 들어라!

<안기종의 환우 이야기>

“환자는 말하고 싶다”

환자들이 환자단체를 찾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민원’ 때문이다. 의료민원은 내용에 따라 유형이 천차만별이지만 일반적으로 4가지로 분류된다.

첫 번째가 ‘고충 토로형’이다. 화가 나고 속이 터지니까 자기 사연을 들어달라는 것이다. 의료민원의 70% 이상이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민원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적절하게 반응하면서 잘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

만일 해당질환 환자단체가 없거나, 있어도 환자단체 상담을 통해 이러한 고충 토로형 민원이 해소되지 않으면 환자는 관공서나 보건소로 향한다. 그러면 행정처분이 필요한 중요한 민원사건을 처리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한 공무원들이 환자들의 고충토로를 듣는데 몇 시간을 보내야 한다. 행여나 잘 들어주지 않으면 환자들의 호된 항의나 비난까지 받게 된다. 관공서나 보건소의 숙원사업이 ‘고통토로형 민원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두 번째가 ‘복수 요청형’이다. 자기에게 피해를 주었으니까 형사 처벌을 받게 하거나 언론방송 보도를 통해 명예를 실추시켜 달라는 민원이다. 막가식파 민원이 많고 자신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으면 환자단체에 분노를 쏟아낸다.

세 번째가 ‘소송지원형’이다. 현재 민형사소송 중인데 자기가 불리하니까 도와 달라는 민원이다. 보통 수백 페이지 분량의 서류뭉치를 항상 가지고 다니고 대부분 패소 확률이 90% 이상인 사건들이다.

네 번째가 ‘공익목적형’이다. 자신이나 가족과 같은 불행한 의료사고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법령을 제정하거나 제도를 만들어 달라는 민원이다. 공익 목적의 이러한 민원은 언제나 반갑지만 가뭄에 콩나듯 드물다. 3년 전 항암제 빈크리스틴이 잘못 주사되어 사망한 종현이의 부모가 제2의 종현이가 나오지 않도록 ‘환자안전법’을 제정해 달라고 했던 민원이 대표적이다.

의료민원은 듣는데 엄청난 인내가 필요하다. 환자들은 결론부터 먼저 얘기하지 않는다. 보통 서론만 1시간 50분이다. 본론은 10분도 채 안 된다. 중간에 환자의 말을 끊으면 절대 안 된다. 버럭 화를 내기 때문이다. 잠자코 들어야 한다. 2시간 설명을 했는데도 자신이 기대했던 답변을 해주지 않으면 “뭐 이런 곳이 다 있어!”라며 한바탕 욕을 퍼붓고는 가버리는 경우도 많다.

의사나 병원 관계자, 관공서 공무원, 언론방송사 기자, 국회 보좌관 등이 환자나 보호자의 의료민원 설명 듣는 것을 꺼리는 이유도 10분이면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을 2시간 동안 설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환자가 의료사고를 당하거나 의료분쟁에 휘말려도 어느 누구도 환자들의 얘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렇게 귀를 막은 의료인, 정부기관, 언론방송사, 국회 등에 환자들은 더 큰 불만과 불신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대한민국에 환자중심의 의료 환경을 만들기 위해 2010년 2월 4일 창립되었고 현재 7개 환자단체, 9만 여 명의 회원이 참여하고 있다. 환자단체연합회의 창립 슬로건이 ‘Listen to Patient(환자에게 들어라)’이다. 환자단체는 환자들의 얘기를 듣고 환자단체연합회는 환자단체들의 얘기를 듣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환자단체연합회는 억울함, 불만, 가슴속 상처 등으로 분통터지는 환자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일을 환자운동의 중심으로 잡았다.

고충토로형 민원에 대해선 환자와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으로 2시간 동안 진지하게 들어왔고, 소송지원형 민원이나 공익목적형 민원은 사건일지와 주요논점을 A4용지 2~3페이지 분량으로 요약해 주었다. 이렇게 요약한 문서를 가지고 병원, 관공서, 언론방송사, 국회 등을 찾아가 민원을 제기하라고 안내했다.

의료민원 중에는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더 큰, 더 많은 의료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공익 목적의 민원도 많다. 이러한 공익목적형 민원을 제기한 환자나 보호자들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얘기를 마음껏 쏟아내고 함께 위로하고 해결을 위한 지혜를 모으는 소통의 장인 환자샤우팅카페(www.shoutingcafe.kr)을 2012년 6월 27일부터 시작했다.

환자단체연합회는 환자를 똑똑(smart)하고 당당(royal)하고 행복(happy)하게 만드는 환자중심 언론매체인 ‘환자리포트(www.patientreport.kr)’도 조만간 출범시킬 계획이다. 더 많은 환자들의 얘기를 듣고, 이들의 얘기를 언론매체를 통해 더 많은 환자와 국민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코메디닷컴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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