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음파 수술 초고수, 치매-뇌종양 정복을 꿈꾼다

[대한민국 베스트 닥터 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장진우 교수

환자는 헬멧을 쓴다. 수술대에 오르는 대신 동그란 자기공명영상촬영(MRI) 장비 안으로 들어간다. 뇌수술인데 마취도 안한다. 마이크와 스피커로 의사와 대화한다.

의사는 자기공명(MR)실 밖에서 컴퓨터 모니터의 뇌 영상을 보면서 메스 대신 마우스를 움직인다. 환자 뇌의 과녁에 1000여 개의 초음파가 두개골을 지나 집중 타격한다. 환자는 MR실을 나오자 직전까지 덜덜덜 떨리던 손이 거짓말처럼 정상에 가깝게 바뀐 것을 확인한다. 환자의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의사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영화 속의 미래가 아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수술실에서 며칠마다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다. 이 병원 장진우 교수(59)는 초음파 수술로 수전증과 파킨슨병 운동 장애 등을 치료하는 방법을 발전시키고 있다. 2012년부터 지금까지 70여 명의 환자와 가족이 눈물을 흘리거나 부둥켜안고 감격에 젖었다.

장진우 교수는 뇌신경계의 미세한 이상 때문에 몸 기능이 비정상적으로 된 환자에게 수학의 3차원 좌표 원리에 따라 과녁을 정한 뒤 수술하는 ‘정위기능신경외과학’의 세계적 명의다. 대한신경외과학회 이사장인 그는 세계정위기능신경외과학회 차기 회장이기도 하다.

그는 다양한 병을 온갖 무기로 치료한다. 얼굴 경련과 삼차신경통 환자에겐 뇌와 얼굴의 혈관을 들어 스펀지를 살짝 넣어서 압박을 줄이는 ‘미세혈관 감압술’로 치료한다. 파킨슨병, 뇌전증 환자에겐 전기 열로 뇌의 이상 부위를 지지는 ‘고주파응고술’과 뇌에 전극을 심어 전기 자극으로 운동 장애를 치료하는 ‘뇌심부자극수술(DBS)’로 고친다. 이와 함께 뇌전증 미세수술, 감마나이프 수술 등으로도 지금까지 6000여 명을 치료했다.

장진우 교수는 특히 DBS 분야의 세계 최고수로 꼽힌다. 2000년 2월 파킨슨병 환자를 DBS로 치료하는데 국내 처음 성공했고 지금까지 근육 긴장 이상, 난치성 뇌전증, 강박 장애 등 700여 명의 환자를 이 수술로 고쳤다.

그는 2008년 서울대 공대 김성준 교수팀과 함께 5년 동안의 연구 끝에 세계 최고 기능의 DBS 국산기기의 개발에 성공했다. 그러나 제품을 상용화하기로 한 의료 기기 회사가 코스닥 상장에 실패하면서 ‘DBS Made in Korea’는 물거품이 됐다.

“당시 중국의 티엔탄(天壇)병원. 지아오통(交通)대학병원 의사들이 DBS에 대해서 배워갔습니다. 중국은 이들을 중심으로 국가 차원에서 DBS 제품을 개발했죠. 2014년 칭화(淸華)대에서 첫 제품을 내놓았고, 지난 7월 중국정위기능신경외과학회에서 환자 1만 명을 수술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학회에 초청돼 이것을 지켜봐야만 하는 안타까움이란….”

장진우 교수는 DBS 기기의 국산화가 무산될 무렵, 우연히 스위스 취리히 대학교 다이넬 진몬드 박사 팀이 초음파 수술로 통증을 치료한다는 외신을 봤다. 초음파는 뼈를 통과하지 못해서 수술 장비로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상식이었다. 학창 시절 공대 친구와 “초음파로 뇌 치료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돼!” 하고 이야기 나누던 장면이 떠올랐다. 스웨덴 신경외과 전문의 라스 렉셀도 초음파 수술 장비를 개발하다가 한계에 부딪혀 대안으로 개발한 것이 감마 나이프 아니던가?

그러나 장 교수는 그냥 지나치지 않다. 왜 안 될까? 돋보기로 빛을 모으듯, 초음파를 모으면 가능하다는 가설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듯했다. 몇 달 동안 밤낮 관련 자료를 분석하고 이스라엘 회사를 찾아가서 확인한 뒤 일리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그러나 아무도 믿지 않았다. 정위신경외과학의 세계적 대가인 캐나다 토론토대 안드레스 로자노 교수에게 의견을 구하자 “내게 연락이 왔는데,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는 답변을 받았다.

장 교수는 2대(代에) 걸쳐 의료원장을 설득해서 어렵게, 어렵게 연구용으로 장비를 구입했다. 의료원장이 바뀌자 왜 이런 장비를 구입했느냐고 감사까지 받았다. 그는 미국고집적초음파연구재단과 마이클제이폭스재단으로부터 20억 원 후원을 받아 환자를 수술할 수 있었다.

장 교수는 2014년 5월 미국 워싱턴DC의 르네상스 호텔에서 열린 미국정위기능신경외과학회(ASSFN)의 학술대회 오프닝 세션에서 세계 각국의 의사 600여 명을 대상으로 초음파 수술에 대해 특강했다. 로자노 교수를 비롯해서 각국의 대가들이 박수를 보냈다. 장 교수는 또 세계 최고의 임상 의학 학술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에 연구 책임자로 세계 각국에서 수전증 환자에게 실시한 초음파 수술의 안전성과 효과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것을 비롯해 21개의 국제 권위지에 이 수술에 대해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지난 3월 대한의학회가 수여하는 ‘바이엘 의학상’을 받았다. 의학상 선정위원회는 “과거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기던 초음파를 이용한 뇌수술 가이드라인을 고안하고, 로봇 수술이나 뇌심부자극수술과 같은 최신 뇌수술 검사 기술을 보급해 국내 의료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며 수상 이유를 밝혔다. 선정위원회는 또 초음파 뇌수술이 파킨슨병, 수전증, 난치성 강박장애, 우울증 등 다양한 기능성 신경계 질환에 유용하다고 입증한 공로도 높이 평가했다.

장진우 교수는 초음파 수술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뇌에 초음파가 들어갈 때 혈관벽의 문이 열렸다 닫히는 것을 알아낸 것. 뇌혈관 벽에는 뇌혈관연결막(BBB·Blood Brain Barrier)이 세균, 바이러스 등 이물질을 걸러주는 성문(城門) 역할을 하는데, 이 성문은 너무 굳건해서 약이나 줄기세포 등도 들어가지 못하고 뇌의 독성 물질이 밖으로 빠져나가지도 못한다. 장 교수는 초음파로 이 문을 열어 악성 뇌종양, 치매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하거나 독성 물질을 빼내는 방법을 찾느라 밤을 잊고 있다.

장 교수는 스스로 환자로서 의사를 천직으로 삼았다. 그는 고3으로 올라가던 때 결핵성 심낭염(心囊炎)에 걸려서 1년 내내 쓴 약을 복용하며 병원 진찰을 되풀이하며 입시 공부를 했다. 그는 이때 화학자가 되는 꿈을 접고 의대로 진학했다.그는 신경외과 전임의 3년 때 척추 분야의 교수직을 제안 받았지만, ‘뇌의 세계’가 좋아 고사했다. 모교에 못 남아도 괜찮으니 뇌수술을 하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마침 스승인 정상섭 교수가 대학과 병원을 설득해서 교수 자리를 만들어왔다. 스승이 국내에 뇌정위기능신경외과를 도입한 주인공이라면, 제자는 이 몽우리를 활짝 꽃 피웠다는 평가를 듣는다. 장 교수는 환자가 수술 직후 경과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뇌정위기능신경외과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장 교수는 환자가 좋아진 증상에 감격해 할 때 커다란 희열을 느낀다. 특히 DBS와 초음파 시술의 결과는 극적이다.

“평생 누워 있던 환자가 DBS 수술을 받고 뛰어오는 모습을 볼 때의 감격은…. 초음파 수술을 받으면 수전증 환자는 드라마틱한 결과에 눈물을 흘립니다. 파킨슨 운동 장애 환자는 즉시 상태가 좋아지지요. 우울증과 강박증 환자는 서서히 좋아집니다.”

그러나 문득문득 힘이 빠지는 경우가 있다. 얼마 전 해외 학회에서 만난 미국의 후발주자가 정부로부터 5000만 달러의 연구비를 받았다고 자랑할 때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새 분야에서 정부 연구 지원을 받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렇다고 뇌수술이 우리나라에선 큰 수익을 낼 수 없는 분야인데, 병원에 무작정 지원해달라고 조를 수도 없다. 뇌수술 분야는 힘들고, 수익도 크지 않아서 전공의를 모집하는 것조차 힘들다.

장 교수는 기운이 빠질 때마다 연구에 더욱 더 박차를 가하고 환자가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순간을 떠올리며 위기를 돌파한다. 매일 새벽 5시에 일과를 시작한다. 주말에 집에서 쉰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미국, 유럽 등 해외 출장을 갈 때에도 가급적 일정을 줄이기 위해서 애쓴다. 연구, 진료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서다. 초음파 수술의 임상 시험이 성공해서 치매, 뇌종양 환자들의 눈물을 씻겨줄 날을 떠올리며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다.

[사진=세브란스병원]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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