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경험 털어놔도 상처 치유 어려워

미국 국가대표 체조 선수단의 팀 닥터였던 로렌스 나사르. 지난 30년 간 수많은 선수들을 추행한 그의 재판에서 150명 이상의 피해자가 자신이 겪은 폭력을 이야기했다. 그들의 증언은 상처를 치유하는데 도움이 될까? 미국 뉴욕 타임스가 이에 대해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성폭력 트라우마 치료 전문의 일레인 드샴은 “판사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그들의 의중을 판결에 반영했다”면서 증언을 한 대부분이 커다란 위안을 얻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같은 경험으로 맺어진 공동체의 일원이었고, 눈앞에서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더 좋은 시나리오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

문제는 그런 완벽한 시나리오가 드물다는 사실이다. 폭력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 그 끔찍한 세부를 이야기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죽고 사는 문제다. 그러나 이번 사건처럼 세간의 주목을 끌 수 있는가, 이야기를 듣는 주체가 누구인가, 기본적으로 트라우마의 본질이 어떠한 것인가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의 연구자 나딘 워든은 “이야기를 함으로써 자동적으로 치유가 될 거라는 가정은 너무 낙관적”이라고 말한다. 지진이나 학교 총격 사건 같은 끔찍한 사건을 겪은 사람들이라면 그 이야기를 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 널리 퍼진 믿음이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한 연구는 사건을 복기하는 것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이들 대부분에게 효과가 없으며, 어떤 이들의 경우에는 증상이 더 심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트라우마의 세부는 또 다른 고려 사항이다. 기억은 그 자체가 생명을 가진, 특이한 현상이다. 어려서 성 폭력을 겪은 이들 중 몇몇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성인이 되어 어떤 심리적 상흔도 보이지 않는다. 반면 어떤 이들은 그날의 상처를 오늘 일처럼 여기고, 일상에서 오가기 마련인 무심한 손길에도 사건을 환기하며 강력하게 반응한다. 그런 경우라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이 해답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사르 재판에서 인상적인 구석은 그 많은 피해자들이 보는 앞에서 가해자에게 받아 마땅한 벌이 내려졌다는 점이다. 그러나 정의 구현이 상처 치유에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고문 생존자에 대해 연구하는 메틴 바소글루 박사는 정의가 구현된다고 해서 피해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와 우울이 그에 따라 나아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생존자들이 자기가 겪은 일을 이야기 하는 것의 가치는 정의를 이끌어내는 데 있다기보다 평생 마음속에서 끝없이 재생될 내러티브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는데 있는 것이다.

전무후무한 수의 젊은 여성들이 증언대에 선 이번 재판. 마지막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증언에 참가하지 않은 피해자들이다. 그들이 죄책감을 느끼도록 해서는 안 된다.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데에는 특별한 용기가 필요하며, 그에 따르는 결과를 두려워하는 것도 당연하다. 가족이 무너질 수도 있고, 파트너가 기대와 다른 반응을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뉴욕대 교수 주디스 알퍼트는 “어떤 이유든 타당하다”면서 “중요한 것은 각자에게 무엇이 최선인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Pressmaster/shutterstock]

    이용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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