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죽어야 하나” 말기암 환자의 절규

 

췌장암 환자 C씨는 두 번 항암제 치료를 받았지만 암은 점점 더 번져갔다. 아들을 통해 새 치료제에 대해서 듣고 주치의에게 처방 여부를 물었다. 의사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병원에서는 처방할 수 없다고 어물거렸다. 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처방할 수 없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환자의 생명이 최우선 아닙니까? 약값이 비싸도 내가 부담하겠다는데… 내가 효과를 못 볼 수도 있겠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고 싶어요. 어떡하지요? 아, 암이 내 몸속에서 번져가고 있는데…”

S대학병원 종양내과 P교수는 암 치료 및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다. 다른 병원에서 손을 든 환자들이 몰려들지만, 최근 효과가 보고된 항암제를 처방할 때마다 가슴이 찔린다. 보험항목이 아닌 약을 처방했다가 나중에 정부가 문제 삼으면 병원에서 약값을 물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최신 논문들을 검토했더니 방금 온 환자에게도 A약이 효과를 낼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의료시스템에서는 처방하면 안 돼요. 과잉 처방 의사로 낙인찍히고, 환자가 환불을 요구하면 약국도 제약사도 아닌 병원에서 물어줘야 하고… 어느 의사가 환자를 위해 밤새 논문을 뒤적이며 고민하겠습니까?”

최근 유전의학의 급속한 발달로 맞춤형 신약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암이나 중증 신경계 질환 환자들이 혜택을 볼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신약이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입증돼 보험이 적용되기까지 대기 상태인 ‘비급여 신약’을 의사가 처방하면 ‘불법’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에서는 환자가 의사에게 요구해서 약을 처방받아 약국에서 구입해 복용했을 때 책임은 병원에서 진다. 나중에 환자나 보호자의 마음이 변해 보건당국에 이의 신청을 하면 제약사도, 약국도 아닌 병원에서 약값을 물어내야 하는 것. 따라서 가뜩이나 경영난에 몰리고 있는 병원에서는 ‘비급여 약’의 처방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

병원계에서 이 시스템이 불합리하다며 소송을 냈지만, 만족할 결과를 얻지 못했다. 서울대병원이 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비급여 약제에 대해서 일괄적으로 환수한 것은 불합리하다”고 소송을 제기한 데 대해, 서울고등법원 제30민사부는 지난해 1월 “병원의 책임을 60%로 제한해 공단이 환수해간 금액 중 40%인 21억2000여만 원을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재판 결과는 “의사가 최선의 진료를 위해 의학적 근거와 임상적 경험에 바탕을 둔 것이 충분히 인정되므로 의사가 처한 상황을 참작해서 비급여 처방액 전액을 환수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대병원의 A교수는 “의사가 환자를 위해 제대로 처방했다면서 약값의 일부를 내야 한다는 게 정상 판결인가”라면서 “환자를 위해 제대로 처방하지 말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반문했다.

보건 당국에서는 “보험에서 비용 대비 효과가 좋은 약제를 등록하기 때문에 환자를 위해서 비급여 약제의 무분별한 처방을 관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일부 의사가 ‘저급여 시스템’에서 제약사와 합의해서 고가의 약을 처방해 수익을 보전하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의약분업 실시와 약값 리베이트 단속 강화로 부정의 개연성은 현격히 줄었다. 결국 의료계에서는 건강보험공단의 ‘의사와 병원 통제 의도’가 비급여 약 처방 제한의 속내라고 불신하고 있다.

S대학병원의 K교수는 “약효가 탁월한 데도 보험 여부를 따져 처방하지 못하는 의사의 심정을 헤아려야 한다”면서 “환자가 절실히 원하는 비급여 약에 대해서 보험공단이 관여하는 것에 대해서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비급여 약의 제한을 주장하는 사람은 ‘불과 몇 개월 살리자고 고가의 약을 쓰느냐’고 말하는데, 그런 사람도 가족이 암에 걸리면 약을 처방해달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최근 한 환자가 다른 병원에서 ‘이제 방법이 없으니 그냥 기다려라’는 얘기를 듣고 제게 찾아왔는데, 일말의 가능성이 있는 약이 있더군요. 저는 소신껏 처방을 했지만 모든 의사가 그렇게 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가…”

이에 대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신약의 건강보험 등재절차 간소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희귀 질환 약이나 맞춤형 약제의 경제성 평가가 빨리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 보건당국이 비급여 약에 대한 근본적 인식을 바꿔서 의료인들과 합의점을 도출해야 할 이유다.

김열홍 대한암학회 학술위원장(고려대안암병원 혈액종양내과)은 “임상에서 환자를 진료하다보면 보험 가이드라인과 당국의 치료지침 간에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절감한다”면서 “환자들에게 최선의 진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보건당국은 신약에 대해 보험 시스템을 개선하게끔 의사들과 환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당국이 비급여 신약에 대한 개선책을 검토하는 사이에도 수많은 환자들이 ‘최선의 치료’를 갈구하다가 숨을 거두고 있다. 양심적 의사들은 안타깝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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