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둥이도 주사 한방이면 ‘바람기’ 끝?

 

후성유전학적 변화

심한 ‘바람기’는 좀처럼 잡기가 힘들다. 하지만 특정 호르몬을 넣은 주사 한방이면 쉽게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는 ‘금실이 좋은’ 초원들쥐를 연구한 결과다. 미국 들쥐의 한 종인 초원들쥐(prairie vole)는 그동안 생태동물학자를 비롯한 여러 분야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어온 동물이다. 그 이유는 초원들쥐가 일부일처제(한 명의 배우자와만 평생 동안 성관계를 맺는)를 유지하는 독특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동물 중에서 완전한 단혼종(한짝살이종)은 1~2% 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원들쥐가 부부의 연을 맺고, 새끼를 함께 양육하며, 공동으로 둥지를 짓는 모습은 인간의 짝짓기와 일부일처제 행동의 근저에 깔려 있는 생물학적 원리를 이해하는 데 좋은 모델로 여겨져 왔다.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 연구팀은 초원들쥐와 초원들쥐의 사촌뻘로 99%의 유전자를 공유하지만 난교를 일삼는 산악들쥐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연구팀은 초원들쥐가 많이 보유하고 있는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 유전자를 산악들쥐에게 도입했다. 그 결과 산악들쥐들도 초원들쥐처럼 한 명의 짝에게만 애정을 바치는 ‘성실한 남편’, ‘조신한 아내’로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자궁수축호르몬이라고도 불리는 옥시토신은 뇌하수체 후엽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하나로, 자궁의 수축을 일으키거나 유선의 주위를 수축시켜 모유가 나오는 것을 촉진한다. 혈액 안에 방출되어 성적 행동이나 사회성에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옥시토신과 항이뇨 호르몬으로 불리는 바소프레신은 ‘암수의 유대관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초원들쥐는 이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자들은 초원들쥐가 이 두 가지 호르몬을 다른 동물보다 다량 보유하고 있는 데는 후성학적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초원들쥐의 짝짓기 행위가 염색체에 영구적인 화학적 변화를 일으켜, 성생활과 일부일처제 행동을 주관하는 유전자의 발현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의 토머스 인셀 박사는 “이번 연구는 들쥐 부부의 교미 행위가 후성학적 변화를 일으키고, 이것이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미쳐 장기적인 행동변화(일부일처제)로 이어진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에 실렸다.

    권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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