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컷이 ‘사랑’ 뒤 낮잠 못자는 까닭?

초파리 실험 결과 “정자의 성분 탓”

수컷의 정자에 코팅돼 있는 ‘성 팹티드(소수의 아미노산이 결합한 형태)’가

암컷의 낮잠을 방해해 하루 종일 일하도록 부추긴다는 것이 초파리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밝혀졌다.

영국 리즈 대의 엘윈 이삭 교수팀은 짝이 있는 암컷 초파리와 처녀 초파리의 수면

패턴이 뚜렷히 다르다는 사실에 근거, 수컷 초파리 정액에 이와 관계있는 성분이

있는지 조사했다. 초파리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썩은 과일이나 야채 주변을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밤중에는 깊게 자며 낮에는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토막잠을 자는 등

인간과 비슷한 수면 패턴을 가진 동물이다. 그런데 짝이 있는 암컷 초파리는 낮에

잠을 자는 대신 식량을 구하러 돌아다니거나 알을 낳을 장소를 물색하는 등 수컷

및 처녀 초파리와 다르게 행동하는 경향을 보인다.  

연구진이 수컷 초파리 정자를 분석했더니 꼬리부분에 들어있는 성 펩티드가 암컷이

낮잠을 못 자게 만드는 성질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성 펩티드가 없는 정자를 만든

수컷과 사랑을 나눈 암컷 초파리는 변함없이 낮잠을 잘 자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최근 연구에서는 이 성 펩티드가 암컷의 알 생산을 돕는다고 밝혀지기도 했다. 짝이

없는 암컷은 매일 1~2개 알을 생산하지만 성 펩티드가 들어있는 정자를 전달받은

암컷은 하루에 알을 100개까지 낳을 수 있는 것. 수면은 생명체에 필수적이며 고유한

요소라는 점에 비춰볼 때 수컷 초파리가 긴 시간에 걸쳐 암컷 초파리의 잠을 방해하는

것은 희생을 강요하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연구진은 “암컷이 낮잠 대신 후손을 낳거나 양육환경을 조성하는 작업에 열중하도록

유도하는 수컷의 행동은 짝짓기 이후 성공적인 아버지가 되기 위한 확실한 토대를

닦는 작업일 수 있다”며 “이번 연구결과에서처럼 자연적인 분자변화가 어떻게 수면을

방해할 수 있는지 그 작동원리를 밝혀낸다면 기면증 등 수면장애 환자의 치료에 응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연구결과는 ‘영국 왕립학회보 B(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최신호에

소개됐으며 미국 온라인 과학신문 사이언스데일리, 이사이언스뉴스 등이 28일 보도했다.

    김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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