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대법원 허용 판례 나왔다

대법관 9명 다수의견…논란 여지 남아

존엄사를 인정하는 대법원 판례가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라며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 모(77ㆍ여) 씨 가족이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을

상대로 낸 ‘무의미한 연명치료 장치 제거 등 청구소송’에서 인공호흡기 제거를

명한 원심 판결을 대법관 9명의 다수 의견으로 확정했다.

대법원은 이번 소송에 대한 판단은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데다 존엄사의 기준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보아 대법원장을 비롯한 13명이 모두 심리에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사건을 회부했으며, 지난 4월30일 이례적으로 공개변론을 열어 존엄사에 관한 찬반

의견을 듣기도 했다. 대법원은 김 씨가 생존해 있을 때 결론을 내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일반 사건과는 달리 대법원에 상고한 지 80 여 일 만에 서둘러 이날 선고했다.

재판부는 “회복 불가능한 환자에게 치료를 계속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치는 것이어서 환자의 의사를 추정해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사회 상규나 헌법 정신에도

부합한다”며 “생명과 직결되는 진료 중단은 생명 존중의 헌법 이념에 비춰 신중히

판단해야 하나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 명백할 때는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환자는 사전의료 지시서 등의 방법으로 미리 의사를 밝힐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평소 가치관, 신념 등에 비춰 객관적으로 추정적

의사가 인정되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 경우도 전문의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 등의 판단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신중한 판단을 요구했다.

대법원은 김 씨가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여서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진입했다고

평가되며, 기독교 신자인 김 씨는 평소 자녀들에게 ‘내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호흡기는

끼우지 말라’고 말해왔던 점 등을 미뤄 치료 중단의 뜻이 있는 것으로 봤다.

다만 안대희, 양창수 대법관은 김 씨의 상태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김 씨가 현 시점에서 연명치료 중단을 바라고 있는지 추정하는 것은 어렵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이홍훈, 김능환 대법관도 환자가 돌이킬 수 없는 사망 상태에 이르렀다는 판단을

할 수 없다며 반대하는 소수 의견을 냈다.

이 사건은 작년 2월 병원에서 폐 조직검사를 받다가 출혈로 식물인간 상태가 된

김 씨의 자녀들이 “평소 어머니가 존엄한 죽음을 원했다”면서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해 달라”고 낸 소송이다.

1, 2심에서는 환자의 상태와 존엄사를 인정하기 위한 기준, 존엄사 판단 주체

등이 주요 쟁점이 됐고 1, 2심은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다며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는

판결을 각각 내렸다. 병원 측은 연명 치료를 중단하라는 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다.

2심에서 서울고등법원 민사 9부(이인복 부장판사)는 2월 10일 판결을 내리며 앞으로

연명 치료 중단을 위해서는 엄격한 충족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며 △환자의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 중단 의사는 합리적인 확인을 거쳐야 하며 △고통을 경감시키는 치료

등은 중단할 수 없고 △치료 중단 실행은 의사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4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존엄사 재판 일지

△2008년 2월 18일 김모 할머니, 폐렴 여부 확인 위해 기관지 내시경 검사 중

출혈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짐

△5월 9일 가족, 서울서부지법에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지 가처분 신청

△5월 10일 가족, 존엄사 관련법이 없는 것은 헌법 위배라는 헌법소원 제기

△6월 2일 가족, 병원을 상대로 서울서부지법에 민사소송 제기

△7월 10일 서울서부지법 민사 21부(부장판사 김건수) 가족의 연명치료 중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기각 결정

△9월 1일 서울 서부지방법원 민사 12부(부장판사 김천수), 병원 현장 검증

△10월 8일 재판부,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에 환자 신체에 대한 감정을 의뢰

△11월 6일 공개 변론

△11월 28일 1심 선고공판, 가족 측 승소 판결

△12월 18일 병원 측 비약상고 제안했으나 가족 측 거절

△2월5일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 존엄사법 대표발의

△2009년 2월 10일 2심인 서울고등법원 민사 9부(이인복 부장판사)에서도 가족

측 승소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 연명치료 거부 후 선종

△2월25일 병원 측 상고장 제출

△2월27일 대법원 접수(사건번호 : 2009다17417)

△3월3일 대법원 1부에 사건 배당

△4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참석 존엄사 공개변론

△5월 18일 서울대병원, 존엄사 찬성 공식입장 밝혀

△5월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가족 측 승소 판결

    정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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