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생명 죽여 놓고 사과 한마디 없다니…”

송명근 수술에 아들 잃은 부부의 눈물겨운 설날

강원 철원군 김화읍에서 농사를 짓는 황희로(64) 김경희(54) 씨 부부는 이번 설

연휴에도 이 세상에 없는 두 아들 생각을 떨치려 이를 악물고, 도리머리를 흔들며

지냈다. 두 아들은 1년 사이로 그들 곁을 떠났다. 첫째 아들은 직업군인으로 근무하다

병사의 실수로 전차에 치여 숨졌고, 둘째는 ‘심장수술의 명의’라는 송명근 교수에게

수술을 받고 거짓말처럼 눈을 감았다.  

특히 병원 중환자실에서 “배가 고파요”라는 한 서린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둘째 봉현 씨의 죽음은 믿기지가 않는다. 황씨 부부는 봉현이의 모습이 눈에 밟힐

때마다 눈물을 감추며 기억을 씻어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아들의

살가웠던 모습들이 비수(匕首)처럼 가슴을 찔러 오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황 씨는 이번 설날 큰집에서 차례를 지냈지만 아내 김 씨는 전날까지 차례 상

준비만 하고 제사 당일에는 집을 지켰다. 황 씨는 친척들 앞에서 애써 슬픔을 감추려

밝은 얘기를 많이 했고, 친척들은 이에 맞장구를 쳤지만 모두의 목소리는 젖어 있었다.

봉현 씨의 친구들이 황 씨 집에 세배를 오자 어머니의 눈시울은 또다시 붉어졌다.

봉현 씨는 초등4학년 때 판막질환으로 진단받고 쭉 건강관리를 해오다 재작년

숨이 가빠지는 느낌을 받으면서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인터넷에서 송명근이라는

이름 석 자를 찾아냈고, 2007년 7월에 서울아산병원으로 향했다.

봉현 씨가 “원래 다니던 병원에서 10월에 수술받기로 예정돼 있다”고 말하자,

당시 아산병원 흉부외과에서 근무했던 송 교수는 상태가 급하다며 하루라도 빨리

수술 받을 것을 권했다. 평생 항응고제를 먹지 않아도 된다는 최신 수술법, 요즘

논란에 휩싸인 그  CARVAR(종합적 대동맥 근부 및 판막치환) 수술법이었다.

송 교수는 이 수술법이 완벽한 수술법이라는 점만 강조했다. 봉현 씨는 수술 뒤 2년

동안 사귀어왔던 여자 친구와 여행을 갈 계획이었다.

수술 절차는 보름 만에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송 교수의 수술 뒤 일성은 “수술이

잘 됐다”였다. 그러나 웬일인지 온몸이 뜨거워지면서 덜덜덜 떨렸다. 봉현 씨는

의료진에게 뭐가 잘못 됐나 따지자고 했지만 김씨는 “의사를 믿고 기다려보자”며

말렸다. 아들은 며칠 뒤 귀가 안 들린다고 호소하며 정신을 잃었다. 수술 부위에

세균이 침투해서 염증이 생긴 것이었다.

심장 수술 뒤 2~3개월 이내에 발생한 심내막염은 수술과 관련된 부작용이라는

것이 학계의 견해지만, 봉현 씨는 수술 직후 문제가 생긴 경우였다. 봉현 씨는 CARVAR 링을 기계판막으로 교체하는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이때부터 송 교수 보기가 힘들어졌다. 송 교수는 재수술 뒤 휴가를 떠나 버렸다.

봉현 씨는 주치의가 없어 항생제만 복용하며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송 교수는 9월

초 다시 나타나서 재수술을 하고는 또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가족들은 봉현 씨가

추석 연휴에 제대로 처치도 받지 못했다고 여기고 있다. 환자는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송 교수는 수술 뒤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한 달 뒤 건국대병원으로 떠난다는

얘기가 나왔다.

건국대병원 흉부외과로 옮긴 송 교수의 뒤를 후배 이재원 교수가 맡았다. 그러나

이미 봉현 씨에게 심내막염의 합병증으로 혈관이 부어올랐다 터지는 ‘가성 대동맥류’가

발생한 상태였다. 직전에 송 교수의 환자 중 30대 여성 1명이 똑같은 수술을 받고

비슷한 상황이 생겨 숨졌기 때문에 병원에는 비상이 걸렸다. 그러나 봉현 씨의 수술

부위는 이미 지독한 세균 감염으로 덮여있었다. 그 역시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아버지 황 씨는 송 교수의 무성의한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다.

“송 교수가 훌륭하다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환자를 무성의하게

보는 의사가 어찌 명의이겠습니까? 수 백 억 원 기부한다는 것도 자신의 인기를 위해

그러는 것으로 비쳤질 따름이었습니다.”

“송 교수가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 했지만 자식을 잃게 했다’고 진심을 보였다면

이렇게까지 원망하지 않았을 겁니다. 송 교수는 책임을 아산병원 교수들에게 떠넘기는

모양인데, 우리 같은 범부도 알 것은 압니다. 뒷수습한 아산병원 교수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송명근 교수는 자신이 개발한 CARVAR의 안전성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부작용으로

사망한 사례가 한 건도 없다고 강조해왔다.

김 씨는 둘째 봉현이의 마지막 목소리가 귓전에서 사라지지 않아 가슴이 아프다.

아들은 “중환자실에서 주무시지 마시고 편한 데서 주무세요”라고 말했다. 김 씨가

들은 아들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봉현 씨는 다음날 새벽 간호사에게 “배고파요,

밥 좀 주세요”라고 말하고, 입원 105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26년의 짧은 삶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배고픈 상태에서 숨을 멈춘 것이 못내 가슴 아프다.

황 씨는 자신보다 아내가 걱정이다. 아내는 큰아들이 졸지에 세상을 떠나고 난

뒤 유일하게 남은 아들 봉현의 다정하고 살가움에 기대 살았기에 충격이 더 컸다.

아내는 봉현 씨가

입원 중이던 105일 중 이틀 외에는 병원에서 살 정도로 둘째에게 매달렸다.

황 씨는 아들의 시신을 선산에 묻지 않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수목장을 하고

아내에게 위치를 알려주지 않았다. 아내가 매일 아들의 혼을 찾아가서 눈물로 지새우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아내는 아들이 죽은 뒤 작은 일에도 쓰러진다. 황 씨는 농사를

하다가도 수시로 집에 전화해 아내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 버릇이 됐다.

황 씨 부부는 이번 설날에도 TV를 틀지 않았다. 오순도순한 가족들의 모습, 병원,

군대의 모습이 나오면 어쩐지 눈물이 핑 돌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부의 방에 걸린

아이들의 어릴 때 사진은 아직도 떼어낼 수가 없다. 가끔씩 사진 속의 아들과 눈이

마주치면 가슴이 터질 것 같지만, 그 사진이라도 없으면 갑자기 세상이 텅 비었다고

느껴질 것 같기 때문이다.

    강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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