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 틀고 자면 사망? 한국만의 미신?

위키피디아 “한국의 미신일 뿐”

6일 경북 영덕의 낮 기온이 섭씨 37.7도를 기록하는 등 불볕더위가 예년보다

일찍 찾아왔다. 많은 사람이 고유가(高油價)시대에 에어컨 켜기를 주저하는 것이

사실. 그렇다고 선풍기를 돌리자니 ‘건강’이 염려된다. 올해 벌써 2명이 선풍기

때문에 숨졌다고 보도됐기 때문.

언론에 따르면 광주 광산구의 한 음식점에서 종업원 이모(35) 씨가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다 숨졌고, 지난 2일 광주 북구 두암동 조모(56) 씨가 자신의 방에서 선풍기를

켜놓고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2명 모두 선풍기로 인한 저체온증(低體溫症)으로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방재당국은 “잘 때 선풍기를 오래 틀어놓지 말라”고

당부했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언론에서는 ‘선풍기 사고사’를 보도한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 2004~2006년 선풍기, 에어컨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20건이었다.

그러나 의학계에서 ‘선풍기 사고사’가 일어날 확률은 거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선풍기를 켜놓고 숨질 수는 있지만 선풍기 바람 때문에 멀쩡한 사람이 숨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대한민국의 미신?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서는 ‘선풍기 사망(Fan Death)’을 ‘대한민국의

미신(South Korean Urban Legend)’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때 ‘Urban Legend’는

직역하면 ‘도시의 전설’이지만 영영사전에 ‘많은 사람이 믿는 이상하거나 놀라운

이야기로 사실은 진실이 아닌 것, A strange or surprising story which many people

believe, but which is not actually true)’으로 풀이돼 있어 우리말로 미신에 가장

가깝다.   

위키피디아는 누구나 참여해서 만드는 오픈형 백과사전으로 과학 항목의 정확도가

영국의 《브리태니커》에 못지않다는 내용의 논문이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되기도

했다.

이 사전은 한국 정부와 언론이 선풍기 사망을 기정사실로 믿고 있지만, 선풍기를

사용하는 어느 나라에도 선풍기 바람 때문에 죽었다는 사람이 없으며 과학적으로

따져도 선풍기 바람에 숨질 수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기관인 한국소비자원에서 여름철

5대 사고에 ‘선풍기 및 에어컨 질식사고’를 포함시킨 것도 흥미있는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선풍기 사고의 메커니즘

그렇다면 선풍기 바람이 사망사고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국립암센터 서홍관 박사(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선풍기가 사망원인이 되는지에

대한 근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으므로 진위 여부를 말할 수 없다”며 “예전에

한 대학교 예방의학교실에서 이와 관련한 실험을 한 적이 있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 박사는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면 저체온증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지만, 사망사고가

일어났을 때 선풍기 바람을 어느 쪽으로 쏘이고 있었는지, 강도는 어떠했는지 등을

확실하게 분석해서 데이터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체로 선풍기 사망사고의 원인으로는 △산소부족으로 인한 질식 △얼굴의 호흡

방해 △저체온증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선풍기의 날개 회전이 산소부족을 유발할 만큼 공기 압력을

바꾸지 못한다. 또 선풍기 날개는 촛불이나 난로처럼 공기의 화학성분을 바꾸지 못한다.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이윤성 교수는 “바람 때문에 코앞의 압력이 낮아져 공기를

들이쉬지 못하므로 질식한다는 주장도 있다”며 “이 논리가 사실이라면 승용차나

오토바이를 타고가다 숨지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고는 없다”고 말했다.

저체온증 유발 갑론을박

논란으로 남는 것은 저체온증이다. 《위키피디아》는 저체온증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저체온증이 유발되려면 방 온도가 떨어지거나 인체 내부의 온도가

떨어져야 하는데 선풍기 바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 사전에 따르면 선풍기 바람이 실내온도를 떨어뜨릴 수는 없으며, 미국에서는

오히려 선풍기만으로는 뜨거운 방에서 열사병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

2007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데레작 부차마 박사 등은 《미국내과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더운 방에서 선풍기가 잠시 인체 피부의 증발을 유도해 체온을 내리지만,

곧 선풍기의 과열로 인해 방 온도가 다시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 열생리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캐나다 매니토바대 고드 기스브레흐트 교수는

“저체온증으로 숨지려면 체온이 10도 내려가서 28도 이하여야 하지만 하룻밤에 방

안에서는 2, 3도 이상 떨어지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특수상황도 고려해야”

반면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어은경 교수는 “위키피디아의 설명이 전적으로

옳다고 볼 수는 없다”며 “선진국에서 선풍기 사망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에어컨을

많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며 선풍기를 많이 사용하는 나라에서는 이에 대해 연구를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선풍기 사망사고가 난다는

것은 주거 구조상의 특성도 작용할 수 있을 것이란 추측을 덧붙였다. 그는 “정확한

근거가 없는 만큼 선풍기가 사망원인이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다”면서 “선풍기가

저체온증을 유발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서 박사도 “중요한 것은 우리 몸 바깥의 외부 온도가 아니고 심혈관의 온도”라며

“인체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효소가 가장 활발할 때는 36.5도이며, 선풍기

바람 때문에 체온이 그 이하로 떨어지면 효소의 움직임도 저하돼 점차적으로 의식을

잃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강한 사람은 체온이 떨어졌을 때 무의식적으로 체온이 더 떨어지지 않도록 이불을

덮는다거나, 웅크린다거나, 깨어서 선풍기를 끈다거나 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체온조절중추가

‘체온저하 정지 명령’을 내려서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강희철 교수는 “술에 취한 상태라거나,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 환각 상태로 잠이 든 사람은 체온이 정상치 27도 이하로 떨어져도

반응을 하지 못하며 건강한 사람도 간혹 선풍기로 인해 저체온증, 호흡곤란 등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선풍기가 직접적인 사망원인이든 아니든, 환경적인 요소와 함께 잠잘

때 사망 가능성이 높도록 만드는 것은 분명하다”며 “어린이, 노약자, 다른 질환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은 특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선풍기 사망설’을 부정하는 의학자는 “선풍기가 저체온증을 일으킨다면

에어컨도  마찬가지이며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틀어놓았다가 숨지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만, 우리나라 외에는 없다”고 일축했다.

이윤성 교수는 “선풍기 사망사고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급성 알코올중독 등으로 사망했는데 우연히 선풍기나 에어컨이 켜져 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인요한 교수도 “창문이 닫힌 방에서 선풍기를

틀어놓고 숨질 수는 있지만 폐색전증, 뇌혈관장애, 부정맥 등 때문이지 선풍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정은지 기자
    정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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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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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 2020-07-22 22:48:49 삭제

      아니라고 생각 하는 박사님들은 선풍기 켜놓고 자면 되겠네. 왜? 왜? 왜? 괜찮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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